일감 정체-인건비 급등-고금리 겹쳐 10월까지 파산, 작년 1년치보다 많아 대기업마저 공장 문닫거나 구조조정 IMF, 올 성장률 2.5%→2.2% 하향
극심한 경기 둔화 탓에 파산한 국내 법인 수가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버텼던 기업들이 수년째 정체된 일감과 치솟는 인건비, 고금리 속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내수 버팀목인 중견 중소 기업들은 “이대로 가다간 내년에도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처리된 법인 파산 선고(인용) 건수는 1380건으로 전년 동기(1081건) 대비 27.7% 늘었다.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 연간 처리 건수(1302건)를 이미 넘어섰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매주 접수되는 법인 파산 사건 수도 2, 3년 전과 비교하면 1.5∼2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에 의뢰해 올해 6∼10월 사이 파산 공고가 난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도·소매업이 39.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제조업(22.2%), 정보통신업(11.5%), 건설업(9.5%) 순이었다.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내수 기업과 중견 수출 기업들이 특히 타격을 입었다. 한 중견 반도체 장비기업 사장은 “범용, 구형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약하고, 중국 수출도 만만치 않아 보릿고개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2%, 내년에는 2.0%로 기존 전망치에서 각각 0.3%포인트, 0.2%포인트 하향 조정하며 “강력한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건비는 오르는데 중국산 저가 공세, 공장 버틸 재간이 없어”
[벼랑 끝의 기업들]
경기 평택시 제조업체 단지 르포
年매출 1000억 넘던 전자기기 공장… 5년째 손실 내다 결국 지난달 파산
장비-부품사 3년째 수주 끊긴 곳도… 남은 기업도 “올해만 견디자는 심정”
경기 평택시 제조업체 단지 르포
年매출 1000억 넘던 전자기기 공장… 5년째 손실 내다 결국 지난달 파산
장비-부품사 3년째 수주 끊긴 곳도… 남은 기업도 “올해만 견디자는 심정”
디엘티는 한때 매출이 1000억 원 넘는 회사였다. 가성비 좋은 액정표시장치(LCD) TV로 빠르게 성장했다. 직원 수도 2016년 60명에서 2017년 124명으로 두 배가 되며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대표 혁신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9년부터 5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해 매출은 70억 원으로 쪼그라들어 결국 지난달 파산했다. TV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는 오르는데 중국 기업은 물량 공세를 펼쳐 중소 TV 기업들이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실려 나가는 매각 자산 20일 경기 화성시 향남읍 우성테크 공장에서 매각 자산인 금형 사출기가 트럭에 실리고 있다. 자동차 부품 관련 금형 사출 전문 기업인 우성테크는 인건비 및 자재값 부담과 중국 업체와의 경쟁으로 실적이 악화돼 올해 8월 29일 파산했다. 화성=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인 반도체, 배터리 분야 분위기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익률은 높지만 물량은 범용 제품에 비해 적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에 국한해서만 인공지능(AI)발 수혜가 집중된 탓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소재나 장비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중소 반도체 장비업체 티아이이엘(TIEL)은 급격한 실적 악화로 올 7월 파산했다. 2020년 전기차용 반도체 제조 장비 등 틈새시장을 공략해 2022년 매출 170억 원까지 냈었던 곳이다. 티아이이엘 사정을 아는 한 장비업체 사장은 “주로 레거시(구형) 장비를 중국에 수출해 매출을 일으켰는데 대중 규제와 중국 현지 기업들의 자립 탓에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졌다”며 “국내 장비, 부품 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은 똑같다. 3년간 수주가 끊긴 곳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배터리 부품업체 사장은 “어떻게든 올해만 살아남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데 내년에 좋아질지 의문이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평택·화성=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