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피로에 찌들어 사는 현대인들. 오랜 시간 자고 운동에 사우나까지, 온갖 방법을 써도 피로는 좀처럼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피곤한 건 일상이니 그냥 마음 접고 피로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에이미 샤 지음·김잔디 옮김·북플레저)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의사인 그는 내과와 알레르기·면역, 두 분야의 전문의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돼 스스로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그러다 운전 중 분리대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충격을 받은 그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우선 호르몬, 면역계, 장 건강이 에너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짚는다. 그리고 에너지를 활성화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신선한 재료로 식단을 짜고, 그냥 오랜 시간 굶는 게 아니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간헐적 단식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직접 시도해본다. 에너지를 되찾은 그는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들에게도 이를 적용해 효과를 봤다고 말한다.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는 올해 7월 출간된 후 4개월간 3만 권이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피로를 푸는 법을 다룬 책은 이미 많이 출간됐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책을 출간한 배상현 책읽어주는남자출판그룹 북플레저 본부장(42)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5일 만났다.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 책표지. 북플레저 제공
“전승환 책읽어주는남자 대표님이 지난해 9월 이 책을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마존을 살펴보다 제목이 재미있어서 눈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원제는 ‘I‘m so effing tired’. 우리말로 ‘나는 너무 개피곤해’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제목을 보자마자 확 와 닿았어요. 속어인 ‘effing’을 사용한 게 특이했고요. 내용은 기존 건강서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간헐적 단식은 널리 알려졌지만 저자는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잠자고 음식을 먹는 ‘생체 리듬 단식’을 제안하는 등 조금씩 차별화된 부분이 보였고요.”
2주간 날짜별 단식 시간과 매 식단, 그리고 레시피를 상세하게 소개한 ‘생체 리듬 단식 2주 계획’도 눈길을 끌었다.
저자는 호르몬, 면역계, 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하고 또 피로를 느끼게 만드는지 먼저 설명한다. 배 본부장은 “의학적으로 새로운 사실은 많지 않지만 이해하기 쉽게 썼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를 출간한 배상현 책읽어주는남자출판그룹 북플레저 본부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전 대표와 배 본부장은 책을 내기로 곧바로 결정했다. 이어 우리말 제목인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를 금방 떠올렸다고 한다. 제목을 정할 땐 출간 막바지까지 진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단박에 먼저 해결된 것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제목은 많은 이들에게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기자도 서점에서 제목을 보자마자 책을 집어 들었다.)
계약도 빠르게 진행됐다. 저자는 유명인이 아닌데다 현지에서 2021년 출간된 이 책이 그의 첫 책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판권을 구입했다. 번역은 의학책을 번역한 경험이 있는 김잔디 번역가에게 요청했다.
“계약까지는 단숨에 진행됐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은 치열했습니다. 의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우리말로 옮길 때 틀린 게 없는지 김 번역가와 함께 일일이 다시 확인했어요.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레시피에 인도인과 미국인이 즐기는 재료가 꽤 많아요.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포함된 레시피는 저자의 허락을 받아 몇 개 뺐습니다.”
배 본부장과 김아영 책임편집자를 비롯해 마케터 등 북플레저 소속 5명은 표지 디자인과 문구도 하나하나 논의했다. 원서 표지는 영어 제목을 크게 쓴 디자인으로 밋밋한 편이다. 논의 끝에 굵은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재미있는 요소를 추가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effing tired‘가 우리말로 ‘개피곤’ 정도로 풀이되니까 사람 머리 위에 개를 얹어보기로 했어요. 눈 밑에 다크 서클도 넣고요. 다들 무릎을 쳤죠. 제목이 눈에 띄니까 도드라지게 배치했고요.”
‘이 죽일 놈의 피로와 결별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넣고, 표지 아래에는 ‘내가 X피곤한 이유를 이제야 찾았다’는 문구를 배치했다.
“완성된 책을 보니 의도한 대로 약간 틀어진 B급 대사를 건네는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함께 잘 깎았다’고들 말했어요. 책마다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른데요, 이 책은 진짜 재미있었어요. 신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자연스레 조율돼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이 속하는 분야는 의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로 정했다.
“서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넓게 배치하는 책이 자기계발서입니다. 의학서는 그렇지 않아요. 서점을 찾은 분들의 눈에 많이 띄는 게 중요하거든요.”
피로와 관련된 키워드를 담은 카드 뉴스를 매일 1, 2개씩 올리는 작업을 두 달 가까이 했다.
“카드 뉴스는 100개 중에 하나만 터져도 효과가 있어요. ‘왜 자도 자도 피곤할까’, ‘왜 자도 제대로 잔 것 같지 않을까’, ‘생체 리듬 단식’을 앞세운 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배 본부장은 출판사에 몸담아 온 16년 중 절반은 편집자로, 절반은 마케터로 일했다.
“에세이, 소설책도 만들었지만 제일 많이 작업한 건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예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종이 재료인) 나무에게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웃음)”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북플레저·2024년)는….
미국 의사로,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극심한 피로를 견디지 못해 대형 교통사고를 낸 후 충격을 받아 피로를 푸는 방법을 찾아 소개했다. 내과와 알레르기·면역, 두 분야의 전문의인 저자는 스스로 이를 실천해 보니 효과가 있었고 피로를 호소한 환자들에게 적용해보니 이들 역시 많이 개선됐다고 말한다.
몸의 에너지는 호르몬, 면역계, 장 건강에 영향을 받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3요소를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후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고 7~9시간 정도 자는 게 좋다. 6시간 이하로 자는 건 아예 안 자는 것 못지않게 나쁘다고 말한다. 가공 식품을 피하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도 기본이다. 운동에 답이 있다고 여겨 열심히 운동하는데도 피곤하다면 이 역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의 경우 고강도 운동은 일주일에 3회 이하로 제한하라고 말한다. 나머지 날에는 하루 8000~1만2000보 걷기나 요가 등 저강도 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어떤 운동을 하든 하루에 20분은 움직여야 한다. 햇빛을 받으면 가장 좋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는 가급적 자고 밝을 때 음식을 섭취하는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저자는 이를 ‘생체 리듬 단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간헐적 단식은 보통 오후 8시부터 다음날 낮 12시까지, 16시간 동안 음식 섭취를 중단하고 물과 블랙커피만 허용한다. 저자는 단식을 처음 할 경우 오후 7시에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천천히 시작하면 체내 시계에서 단식을 받아들여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12시간 단식에 적응하면 14시간이나 18시간까지 단식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저자는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생체 리듬 단식 2주 계획’이다. 1일차부터 14일차까지 단식 시간과 식사 시간은 물론 그린 스무디, 콜리플라워 수프 등 날짜별로 매 끼마다 뭘 먹는 게 좋은지 정리했다. 차이 라테, 코코아 귀리 시리얼 바, 구운 채소 수프 등 각 식단의 레시피도 함께 소개한다. 단식 시간대에 배가 고프면 물, 차 등을 마시되 너무 배가 고프면 얇게 자른 아보카도, 아몬드 밀크를 조금 넣은 허브차를 마셔도 된다. 식사 시간대에 먹으면 좋은 간식으로는 견과 반 컵, 신선한 베리류 등을 꼽았다. 저자가 인도계 미국인이어서 인도인과 미국인에게 친숙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 많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몸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어떤 경우 문제가 생기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현재 생활 방식과 섭취하는 음식, 운동 형태, 수면 습관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다. 원제는 ‘I‘m so effing tired’.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