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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뿌리는 하나… 책임감 갖고 지구 환경 지켜야”

입력 | 2024-11-22 03:00:00

‘루시 발견 50주년’ 도널드 조핸슨 미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소장
1974년 발견한 320만 년 전 화석… ‘직립보행 후 뇌 발달’ 증명하고
‘아프리카 인류 기원설’ 힘 실어
“인류,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생존… 함께 환경 보호하며 미래 꿈꿔야”




루시 화석. 팔뼈, 두개골, 아래턱, 골반, 갈비뼈 등이 포함된 47개의 뼛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 제공

1974년 11월 24일 에티오피아 북동부 하다르 지역에서 고인류의 작은 팔뼈 조각이 발견된 후 두개골, 아래턱, 골반, 갈비뼈 등이 포함된 47개의 뼛조각이 잇달아 발견됐다. 고인류의 상징과도 같은 ‘루시’가 현생 인류에 첫인사를 건넨 순간이었다. 연대 측정 결과 루시는 약 320만 년 전 화석으로 당시 가장 오래된 고인류에 이름을 올렸다. 연구자들은 루시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도널드 조핸슨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장이 루시 발견 50주년을 앞두고 본보와 국내 첫 언론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조핸슨 소장이 루시 두개골 캐스트와 마주보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 제공

50년 전 루시를 처음 발견하고 “인간 진화의 계보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고 말했던 도널드 조핸슨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장이 루시 발견 50주년을 앞두고 본보와 국내 첫 언론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50년 전 루시의 발견이 인류에 던지는 화두에 대해 조핸슨 소장은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일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 선택의 과정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지구를 책임감을 갖고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뼛조각 본 순간 300만 년 전 화석 알아채”

루시의 뼛조각을 처음 발견하기 전 조핸슨 소장은 3년간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그날도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다가 팔뼈 조각을 발견하고 흥분했다. 그는 “루시의 첫 뼛조각을 발견한 일요일 아침을 또렷이 기억한다”며 “보자마자 300만 년 전 화석임을 직감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조핸슨 소장의 캠프는 열광했다. 1970년대 고인류학계는 침팬지 등 유인원과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최초의 인류’를 찾는 데 관심을 쏟았는데 당시 학계에서 최초의 인류로 추정하던 화석은 250만 년 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밤새도록 비틀스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반복해서 듣던 조핸슨 소장과 연구자들은 화석에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핸슨 소장은 “루시는 모든 현대 인류의 조상이 과거에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며 “오래전 공통 조상을 갖는 인류가 함께 미래를 꿈꾸며 하나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인류의 기원 수수께끼에 답을 내놓다

루시는 고인류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편견을 깨며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촉발했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직립 보행’, ‘도구 제작’, ‘큰 뇌’ 등을 인간의 특징으로 꼽았다. 어떤 특징이 가장 먼저 진화했는지는 당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뇌를 키운 뒤 직립 보행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우세했다.

하지만 루시를 분석한 결과 루시는 키 1m, 체중 27kg의 작은 몸에 뇌 용량은 약 420cc였다. 현생 인류의 10개월 아기 정도의 크기다. 그런데 해부학적으로 루시가 직립 보행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직립 보행 뒤에 뇌가 커졌다는 뜻이다. 루시 발견으로 직립 보행은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 짓는 중요한 증거가 됐다. 또 루시는 고고학계를 주도하던 서구 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던 ‘아프리카 인류 기원설’에 큰 힘이 실리는 증거가 됐다.

50년이 흐른 현재 루시는 더 이상 최초의 인류로 여겨지지 않는다. 루시보다 오래된 고인류 화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루시 발견 이후 44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520만∼580만 년 전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 600만∼700만 년 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등 고인류 화석이 발견되며 인류의 역사를 앞당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발견 이후 할리우드 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루시를 보기 위해 박물관에 줄을 서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시간을 내어 루시를 관람했다는 건 전 세계 뉴스거리였다.

조핸슨 소장은 “최근 루시를 발견한 장소를 다시 방문하며 북받치는 감정을 느꼈다”며 “인간도 자연의 고귀한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졌기에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의무를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생존은 자연과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전 인류가 자연을 지켜내고 미래를 함께 꿈꾸는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