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스코티 셰플러(28·미국)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부터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셰플러는 올해에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7승을 쓸어 담았습니다. 올해 투어에서 챙긴 상금만 무려 6223만 달러(870억 원)나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5월에는 첫아들 베넷이 태어났고, 8월에는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습니다. 셰플러가 “1년 동안 평생을 산 것 같다”고 회상했을 정도입니다. 압도적인 셰플러의 활약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의 전성기와 견줄만하다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셰플러의 자동차가 집중 조명됐습니다. 셰플러가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비영리단체 TOKC에 자신의 자동차를 기부하기로 한 소식이 전해지면서입니다. 신흥 골프 황제는 어떤 차를 타고 있었을까요? 천문학적 수입을 감안해본다면 적어도 억-소리 나는 럭셔리카, 슈퍼카쯤은 타고 있지 않았을까요.
스코티 셰플러와 그의 GMC 유콘. TOKC 홈페이지 캡처
셰플러의 자동차는 놀랍게도 GMC의 유콘이었습니다. 대형 SUV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떠올린 초호화 럭셔리카, 슈퍼카와는 거리가 멉니다. 거기에 차량의 상태를 전해 들으면 더욱 말문이 막힙니다. 연식은 13년에 주행거리는 30만㎞가 넘습니다. 이쯤 되면 뭔가 낭만적인 올드카보단 고물차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합니다.
셰플러는 과거 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 차를 좋아하고 유지관리에 문제는 없다. 집에서 5분 이상 운전하지 않기 때문에 새 차를 사면 힘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집, 골프장, 근처 식당만 오가는 모범생(?)다운 셰플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셰플러가 올드카를 버리지 못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차에 담긴 가족들과의 사연 때문입니다. 셰플러는 투어에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사랑꾼’으로 통합니다. 그의 아버지 스콧 셰플러는 2012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린 마스터스 대회에 갔다 텍사스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이 나면서 지금의 유콘을 샀습니다. 그 후로 프로 골퍼를 꿈꾸는 아들 셰플러를 태운 채 아마추어 대회 출전을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았죠.
셰플러가 프로 무대에 입성한 후에도 유콘과의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대학 졸업 뒤 아버지의 차를 물려받은 셰플러는 2부투어를 돌며 1부 투어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2022년에는 온 가족이 올드카를 타고 함께 온 마스터스에서 셰플러가 감격의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아버지 셰플러가 대회장 인근 매장에서 차를 산 지 꼬박 10년 만의 일입니다. 어찌 보면 셰플러에게 이 올드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 결과 셰플러의 올드카는 비영리단체 기부를 위해 경매 사이트에 맡겨집니다. 경매 입찰가는 5만 달러(약 7000만 원) 가까이 치솟습니다. 13년이 지나도 신차에 준하는 값어치가 매겨진 셰플러의 올드카야말로 진정한 슈퍼카가 아니었을까요.
셰플러의 올드카를 보며 문득 과거 그가 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올 4월 마스터스에서 자신의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셰플러가 기자회견에서 남긴 한마디입니다. 아버지가 길에 멈춰 새 차를 사야 했고, 온 가족이 함께 우승의 기쁨을 누렸던 바로 그 대회죠. 당시 베넷의 출산을 한 달여 앞두고 있던 셰플러는
“부모가 되는 게 기대되는 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준 만큼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What I‘m looking forward to most, I think, about being a parent is being able to love, love my child like my parents loved me.”라고, 말합니다. 한 달 뒤 셰플러가 안아 든 베넷의 얼굴에는 아버지 스콧의 얼굴이 아른거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인생은 돌고 돈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OO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당신에게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