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언어/크리스티안 뤼크 지음·김아영 옮김/292쪽·1만7500원·북라이프
호주 퍼스의 한 대학에서 평생 생태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데이비드 구달은 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2018년 5월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그의 나이 104세. 이날 기자회견은 그가 안락사를 택하기 하루 전에 열렸다. 그는 “삶을 끝낼 기회를 얻어 기쁘다”며 죽음을 하루 앞둔 사람답지 않게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해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90세까지 테니스를 즐기고 102세에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삶이 즐겁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하고 시력이 나빠진 것도 원인”이라며 죽음을 원했다. 다음 날 그의 안락사를 도운 기관 ‘이터널 스피릿’은 “구달 박사는 평온 속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이 책은 역사, 문학,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기록을 통해 문화적으로 자살이 어떻게 해석돼 왔는지 변화 과정을 살핀다. 고대 로마에서 자살은 금기시됐으나 죄악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기독교의 확산과 함께 죄악시된 자살은 ‘지옥행’과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스웨덴에선 1908년에야 처음으로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교회 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또 최근 구달 박사의 죽음 같은 현시대 논쟁적 사례들도 소개한다.
저자는 자살에 대한 특정 결론을 강요하진 않는다. 대신 여러 사례들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무엇이 유의미한 삶을 구성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누군가의 자살을 내버려 두는 것은 괜찮은가. 삶을 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저자의 물음에 답해 보며 죽음에 관해 고찰할수록 삶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