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초고령사회 앞두고 불붙은 정년 연장 논의 행안부, 공무직 정년 65세로 연장… 다른 부처-지자체서도 잇달아 요구 일부 기업, 숙련 인력 잡기 나서고… 10곳 중 3곳은 재고용 제도 도입 국회도 관련 입법 논의 가속도 일괄 연장 땐 기업 간 격차 심화… 전문가 “노사정 머리 맞대야”
《정년연장 논의 어디까지 왔나-
최근 행정안전부가 소속 공무직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한 것을 계기로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공공 및 민간 부문에서 거론되는 정년 연장 방안과 그 장단점을 살펴봤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공노총)의 ‘공무원 정년 연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공노총 측은 이날 “정부와 국회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안정된 노후 보장을 위해 직종별 특수성을 감안한 정년 연장 논의에 당장 나서라”고 요구했다. 사진 출처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 홈페이지
최근 행안부가 소속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한 것을 계기로 정년 연장에 대한 요구가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대구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유사한 조치를 취했고 공무원 노조도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에선 정년 연장을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은 2025년 65세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에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방안이 포함되며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었다.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고령자가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지만 해법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 행안부가 쏘아 올린 정년 연장 논의
행안부는 지난달 14일 ‘행안부 공무직 등에 대한 운영 규정’ 개정안을 시행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현재 60세인 행안부와 소속 기관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별도 심사를 통해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한다는 것이다. 공무직은 청사미화원, 시설관리원, 경비원, 조사원 등으로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공무직 정년 연장이 공공부문 정년 연장의 신호탄으로 해석되자, 행안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 조치는 공무원 정년이나 다른 공공기관의 단체협약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같은 현상은 그동안 누적된 정년 연장 요구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한국은 법정 정년이 60세인 반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현재 63세인데 2033년부터 65세로 늦춰진다.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최대 5년까지 벌어지면서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2022년 38.1%)의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1964∼1974년생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정년(60세)을 맞으며 인력 공백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 7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향후 10년간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 정책 지원 등으로 60대 고용률이 계속 증가한다면 성장률 하락 폭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 숙련 인력 아쉬운 기업도 재고용 나서
동국제강의 경우 올해 4월 노사 합의로 정년을 61세에서 62세로 연장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철강 산업은 숙련된 기술과 축적된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며 “숙련 인력을 계속 확보하려는 회사와 정년 이후 근무를 희망하는 직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KT, 현대자동차, SK에코플랜트도 퇴직자 재고용 제도를 운영 중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년제가 있는 사업체 중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비율은 36%로 10년 전인 2013년(25.7%)보다 10.3%포인트 늘었다.
2002년 입사한 현동식 씨(67)는 현재 촉탁직 직원 신분이다. 현 씨는 “요즘은 60대도 충분히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데 써주는 곳이 많지 않다”며 “체력만 버텨준다면 70세까지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 회사의 허일한 부장은 “지역 인구가 크게 줄어 채용에 어려움이 많다”며 “노하우와 경험이 많은 기존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 회사와 근로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 고용 연장 방식 두고 노사 대립 가열
정부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정년 연장에 대한 노사정 대화를 진행 중이다. 다만 정년 연장뿐 아니라 퇴직 후 재고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령자 계속 고용’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고령자 고용 연장 방식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노사정 합의안 도출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경영계는 “연공서열에 기초한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 부담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최근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노동계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은 질 낮은 일자리와 적은 임금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법적 정년 연장을 통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연령을 늦추고 적정 소득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란 입장이다.
● “일괄 연장보다 상황 맞게 선택지 줘야”
상당수의 전문가는 일괄적 정년 연장보다 기업에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법적 정년 연장은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근로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중 정년제를 운영하는 비율은 94.6%인 반면 300인 미만의 경우는 21%에 그쳤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을 일괄 연장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일본처럼 업종과 사업장 상황에 맞게 노사가 협상을 통해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선 법정 정년을 60세로 규정했지만 기업들이 정년 연장, 퇴직 후 재고용,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 65세까지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일각에선 정년 연장이 청년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된 후 민간부문에서 정년 연장으로 1명의 고령자 고용 증가가 예상될 때 청년 고용이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정년 연장 대상자(50∼54세)가 1명 더 많은 사업장에서 15∼29세, 30∼44세 근로자를 각각 0.37명, 0.61명 추가 고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처럼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부 일자리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도 “나머지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사회적 공감대 없이 추진하면 오히려 갈등과 논란만 커질 수 있다”며 “노사정 대화를 거쳐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자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 교수는 “주력 노동 계층이 50, 60대로 바뀐 만큼 정부가 나서서 고령자 고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