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사진 No. 88
● 깨진 유리창과 사냥용 엽총 사진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의 사연을 찾아가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이번 주에 고른 사진은 열차 폭발 사고 사진입니다. 유리창이 깨져 여기저기 파편이 흩어져 있는 혼란스런 모습입니다(왼쪽 사진). 커다란 총 옆에 보따리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오른쪽 사진). 1924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입니다.
◇사진설명: 깨어진 유리창과 폭발된 나머지/ 1924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 2면.
● 객차 선반 위에 있던 화약이 폭발한 사고
기사를 바탕으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24년 11월의 어느 쌀쌀한 아침, 서울역을 출발 약 1마일을 전진한 경부선 8호 급행열차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시각은 오전 10시 5분. 열차가 용산역을 향해 달리던 그 순간, 맑은 하늘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객실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기관차에서 두 번째로 달린 삼등 객차에서 난 사고였습니다.
“갑자기 굉장한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폭발했습니다. 기차는 비상 기적을 울리며 즉시 멈췄죠.”
폭발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 세 개가 산산조각 났고, 조씨를 포함한 승객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가장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송포(마쓰우라) 가족으로,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조씨는 인력거에 간신히 몸을 의지해 시내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독한 화약 냄새가 객실을 가득 메웠습니다. 승객들은 혼비백산하여 열차에서 뛰쳐나왔죠.”
당시 동아일보는 현장의 혼란상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 사건은 용산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경찰서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경찰관들이 자동차와 도보로 현장에 긴급 출동했습니다. 당시는 각종 풍설이 돌던 시기라 경찰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AI로 만들어 본 사고현장 가상 이미지
1924년 열차 폭발 사건은 단순한 화약 사고였지만, 당시에는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열차 안전 관리가 강화되었을 것이고 대중의 불안은 점차 해소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뒤흔드는 사고도 결국에는 원인을 찾아 해결되고 사회는 점점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전기자동차 배터리가 충전 도중 화재로 이어지는 사고들이 자주 보도되고 있습니다. 신기술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00년 전 열차 사고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 겪는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약을 객실에 들고 탔다는 것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당시에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위험성을 사회 전체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론이 보도하고 공론화시킴으로써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책의 수립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열차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를 계기로 더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발전했듯, 오늘날 전기자동차 역시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며 더 안전하고 신뢰받는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고가 100년 후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오늘은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황당하다고 할, 열차내 화약 폭발 사건 현장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진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