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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美와 갈데까지 가봤다”며 ‘협상’ 첫 언급

입력 | 2024-11-23 01:40:00

평양 무장장비전시회 개막식 연설
“확신한 건 적대적 대북정책” 주장
협상-공존 표현 써 ‘빅딜’ 뜻 내비쳐
트럼프와 대결 구도속 재회 가능성



北, 신형 무기 총동원 무력 과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단 가운데)이 21일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 2024’ 개막식에서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확신한 건 초대국(미국)의 공존 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침략적·적대적 대조선(대북) 정책”이라고 연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군 현대화’를 주문하며 “각종 무장장비들을 계속 갱신하고 첨단화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 주로(노선)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봤다”며 “(협상) 결과에 확신한 건 초대국(미국)의 공존 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침략적·적대적 대조선(대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2차례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등 협상을 했지만 사실상 ‘노 딜’로 끝난 경험 등을 토대로 트럼프 2기 정부를 겨냥해선 핵무력에 근거한 ‘강 대 강’ 정면 대결을 예고한 것. 다만 김 위원장이 트럼프 재집권 후 처음으로 “협상”, “공존 의지” 등의 표현을 꺼내 쓴 자체가 트럼프 당선인과의 ‘빅 딜’ 의지를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핵무기 고도화로 자신감이 커진 김 위원장이 트럼프가 판만 깔아 주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등을 전제로 재회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 기념 연설에서 김 위원장이 이같이 밝혔다고 2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은 절대 적대적이지 않다는 그 교설(교묘하게 꾸민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한 괴설(괴상한 말)로 들린 지 오래”라는 등 미국을 집중 거론했다. 반대로 한국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를 패싱하고, 미국과만 테이블에 마주 앉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등 김 위원장과의 재회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은 이번 전시회 무대 양옆에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화성-18형과 지난달 말 처음 시험발사한 화성-19형 등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란 듯 전시했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에 추가로 무기 수출을 노린 ‘쇼케이스’이자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핵미사일 고도화를 과시하며 추후 협상 시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고위 당국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북한 재래식 무기 현대화에는 이미 도움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규모 파병까지 단행한 북한을 위해 신형 전차 개량, 구형 전투기 성능 개선 등을 해준 것으로 본다는 것.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러시아가 북한에 취약한 평양 방공망을 보강하기 위해 관련 장비와 대공 미사일 등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첨단 방공체계인 S-400 미사일 포대 등을 북한에 이전했다면 우리 정부의 ‘레드 라인’을 넘는 행위일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북-미협상 일단 선그은 김정은, ‘美 공존의지’땐 핵대화 가능성
‘협상’ 단어 꺼낸 김정은 속내는
“최강 국방력이 유일한 평화수호”
트럼프 1기때 성과없는 회담 경험… 긴장 조성하며 ‘몸값 올리기’ 의도
트럼프, 김정은과 회담 수차례 언급… 일각 “북핵 문제, 후순위 밀릴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에서 걸어가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미국과 협상 주로(노선)로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봤다”고 콕 집어 밝힌 건 우선 앞서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만났지만 사실상 빈손으로 성과 없이 귀국한 경험을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앞두고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벌써부터 거론되지만 김 위원장은 당시처럼 미국에 끌려다니듯 협상에 쉽게 나서지 않을 거란 의지를 내비친 것. 나아가 그는 트럼프 정부를 겨냥해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의 국방력만이 유일한 평화수호의 담보”라며 정면 대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을 언급하며 처음으로 ‘협상’이란 표현을 썼다. 트럼프 당선인이 적대적 대북 정책 철회, 경제 제재 완화 등 ‘공존 의지’만 보인다면 역설적으로 협상에 나서겠단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인 7월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고, 우리는 북한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 돌아가면 잘 지낼 것”이라는 등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자주 언급해왔다. 정부 소식통은 “김 위원장도 이런 워딩을 눈여겨봤을 것”이라며 “당장은 아닐지라도 트럼프 당선인과 거래하는 상황을 이미 그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협상’ 처음 언급 김정은, 트럼프와 ‘핵보유’ 공존 의지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가 22일 공개한 A4용지 4장 분량의 연설문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 “우리 손으로 군사적 균형의 추를 내리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미 대선(5일) 이후 열흘 뒤 밝힌 연설에서도 “핵무력 강화 노선은 이미 우리에게 있어서 불가역적인 정책으로 된 지 오래”라고 밝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향해 분명히 드러낸 것. 향후 트럼프 정부와 ‘빅딜’에 나서도 핵군축 수준에서만 허용하겠단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동시에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당장은 긴장 국면을 조성하되 향후 협상판까지 염두에 둔 의미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김 위원장은 2017년 6차 핵실험, ICBM 도발 등을 통해 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될 만큼 긴장 수위를 올렸지만 그 이듬해는 북-미 정상회담 등에 나선 바 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이번에 과거 아픈 대미 ‘협상’의 기억까지 소환한 것은 향후 트럼프 당선인과의 협상판을 염두에 둔 ‘몸값 올리기’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도 “북한이 원하는 건 결국 (동시 핵 보유 등 미국과의) 공존 의지”라고 말했다.

● 트럼프 “김정은과 잘 지낼 것”… “북핵 문제, 후순위 밀릴 것” 관측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3일(현지 시간) 하원 공화당 회의장에 연설하러 들어가는 모습. AP 뉴시스

김 위원장이 ‘중대 도발’로 긴장을 끌어올리든, 전향적으로 협상 의지를 내비치든 향후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핵심 조건은 역시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태도다.

일단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노선 등을 꾸준히 비판하면서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날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처음으로 전격 공개한 직후인 9월,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몇 번 만나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 달에는 “내가 이리 말하면 언론은 난리를 치겠지만 그것(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에 관여한 랜들 슈라이버 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도 21일(현지 시간) 미 싱크탱크 세미나에서 “어느 시점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길 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실제 집권 이후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에 관심이 쏠려 북핵 문제 등은 후순위로 미뤄 둘 거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트럼프 1기 때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어 더욱 높은 몸값을 요구할 것”이라며 “한번 해본 북-미 정상회담에 트럼프 당선인이 매력을 못 느낄 경우 북-미 협상은 트럼프 2기 내내 공전만 거듭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