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 자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세차장에서 땀 흘리며 삶 개척
11월 13일 오후 경기 부천의 한 세차장. 쌀쌀한 날씨에 얇은 옷차림을 한 중년 남자 3명이 차를 닦고 있었다. S 씨(56)는 고압호스를 들고 물을 뿌렸고 다른 2명은 마른 걸레로 창틈 사이 얼룩을 연신 문질렀다. 30분이 지나자 칙칙했던 검은색 세단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평범한 손세차장처럼 보이는 이곳에서는 한때 마약에 빠져 있었지만 이젠 회복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세차장은 신용원 목사(62)가 이끄는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소망사)의 직업자활(自活) 사업장 중 하나다.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 소속돼 직업자활을 하는 사람들이 경기 부천의 한 세차장에서 세차 일을 하고 있다. [윤채원 기자]
S 씨는 19세 때 대마초와 러미라를 처음 접했다. 내성적이고 음주·가무에 서툴렀던 S 씨가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택한 수단이었다. 결국 그는 28세에 2년간 첫 번째 징역살이를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은 마약을 하지 않았기에 출소 후엔 끊을 듯했다. 그러나 이내 또 약에 손을 대 다시 징역을 살았다. S 씨도 끊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정신과 약은 먹을수록 무기력해졌다. “(정신병원에서) 한 달 참았으니까 됐다, 가족한테 이만큼 견디는 걸 보여줬으니까 됐다는 보상 심리로 마약을 더 찾았다”고 지난 세월을 곱씹었다.
S 씨가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아내 한 씨는 남편이 약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그러다 신 목사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신 목사도 17세 때부터 마약을 시작해 34세에 끊은 과거가 있었다.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지금은 목회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신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후 신 목사와 함께 교도소에 있는 남편을 찾아갔다. 출소 후 S 씨는 종교적 체험을 하고 직업자활을 하면서 마약을 끊었고, 지금의 소망사를 이어갔다.
S 씨는 마약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약에 쏠려 있는 관심을 돌리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활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교도소 안에서 정신과 약을 많이 먹어 이미 무기력해진 상태”라며 “아무런 신체활동도 하지 않으면 ‘약을 끊어야지’와 ‘끊기 힘들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비슷한 과정을 지나온 그는 약 후유증으로 늘어져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 “야, 세차장 나올래?”
세차장에 나와 한 번이라도 육체노동을 해본 이는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밤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신과 약을 멀리하게 됐다. 한때 세차장에서 같이 일했던 한 동료가 그랬다. 처음엔 정신과 약 때문에 행동이 느렸고 자주 밤을 새웠다. 몇 달이 지나자 변화된 모습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손님이 오면 직접 안내했고, 세차 실력도 늘었다. 1년이 지난 후엔 생활체육지도사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다.
세차장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2년 ‘소망을 나누는 떡집’이라는 떡 가게로 시작해 순대 공장, 다시 떡 공장을 거쳐 지금의 세차장으로 바뀌었다. S 씨는 “잘된 곳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마약중독자였다는 이유로 차별도 받았다. 떡 공장을 운영하던 2010년대 중반 건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매일 112에 신고 전화도 걸었다. 전(前) 마약중독자들이 일하는 ‘혐오시설’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건물주가 이사비용을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판사는 “그곳 사람 대부분이 벌을 다 받고 새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분들인데 참 힘들겠다”고 위로했다. 법정에서 소망사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쏟았다.
신 목사는 1997년부터 전국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출소한 마약중독자를 모아 20년 넘게 소망사를 이어가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이 자활사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하나다. 마약중독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작은 성취라고 믿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마약중독은 병원만 다니거나 약만 먹는다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마약으로 잃어버린 존엄성을 찾으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돈을 벌어 생계를 잇는 일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년 전 신 목사는 마약 투약자와 그 가족 100명을 모아 강화도나 영종도에 단약 의지를 다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꿈에 어느 정도 다가섰는지를 묻자 “한참 멀었다”며 웃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소망사는 분식집을 열려고 준비 중이다. S 씨는 “지금 셰프 친구가 하나 들어왔다”며 “카레와 돈가스를 할 줄 안다기에 공유 주방을 이용해 배달을 해보려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자활 공동체 구성원의 가족들도 일하고 싶은 사업장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6호에 실렸습니다]
부천=윤채원 기자 yc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