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제품 수시로 변하는 제조환경 과거 데이터 학습으론 대응 어려워 가상 공장에서 시뮬레이션한 AI로 현실 공장 즉각 업데이트해야
일반적으로 인공지능(AI)은 학습을 위해 과거부터 축적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신축 공장은 새로운 장비나 로봇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과거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기존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해도 현대 제조산업 특성상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가 끊임없이 바뀌고 공정 역시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실제 AI 학습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조업에서 전통적인 데이터 학습 기반 AI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사로 최근 각광받는 기술이 바로 ‘제조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으로 현실을 모사한 환경을 구현한 뒤 가상 환경에서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학습시키면서 데이터 부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가상 공장을 실제 공장처럼 학습하고 마치 수년간 관련 업무를 해온 것처럼 착각해 최상의 운영 방안을 도출해주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에서 가상의 기억을 만들어 마치 현실에서 생성된 데이터인 것처럼 AI를 학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과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에게 가상의 어린 시절 기억을 주입해 마치 인간처럼 살아온 존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원리와 비슷하다. 디지털 트윈은 이처럼 일종의 데이터 생성기 역할을 한다.
제조 현장에서의 디지털 트윈이 기술적, 산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AI와 결합해 제조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11월 1호(404호)에 실린 관련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디지털 트윈과 AI가 결합되면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계 고장이나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도 디지털 트윈에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즉시 시뮬레이션해 AI를 학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상황에서도 가상 공장에서 생성한 미래 시나리오를 학습시켜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공장 물류 자동화에서 디지털 트윈과 AI가 만나면 시너지가 클 수 있다. 최근 반도체나 평판 디스플레이 같은 전통적인 첨단 제조는 물론이고 전기차 및 2차전지 생산 공장에서도 수많은 로봇이 물류 반송을 담당한다. 특히 반도체 공장에서는 많게는 1000대의 로봇이 장비와 장비 사이에서 물류 반송을 맡는다.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사람이 일일이 로봇의 작업 규칙을 프로그래밍하고 작업을 할당하는 초기 자동화 방식은 역부족이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로봇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공장 상황도 스스로 인지하고 수많은 시나리오를 신속히 학습하면서 단시간에 현장에 맞는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런 기술이 사전 예측이 어려운 대규모 로봇 군단을 제어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이러한 작업 상황에서는 물류 이동 혼잡이 발생하지 않도록 동선을 파악하고 경로를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로봇 간에 갑작스럽게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이 규칙을 바꿔 다시 코딩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AI가 디지털 트윈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사고 즉시 어떤 우회로로 운전하는 것이 최선일지를 안내할 수 있다. 이렇게 AI와 결합된 디지털 트윈 기술은 이미 사업화돼 포스코 물류 시스템을 비롯한 국내 반도체 및 2차전지 기업에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공장(Software-Defined Factory·SDF)의 구현을 가능케 하고 제조의 미래를 여는 핵심 축이기도 하다. SDF란 운영 시스템이 하드웨어 설비에 의존하지 않고 기능과 성능이 신속히 업데이트될 수 있는 공장을 가리킨다. 애플이 앱스토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새로운 휴대전화 하드웨어 기기를 사지 않고도 필요한 기능을 업데이트해 성능을 개선할 수 있도록 했듯, 공장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아직까지 공장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제조 정보기술(IT) 시스템은 설비, 장비, 로봇 등 하드웨어에 의존적이다. 공장 설비가 추가되거나 공장이 증축되면 시스템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수시로 변화하는 시장과 제품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SDF의 경우 기계, 장비, 설비, 로봇, 자동화 시스템의 내부 소프트웨어 구조를 표준화해 공장 기능도 마치 앱스토어에서 업데이트하듯이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수요와 대외 환경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SDF를 구축하려면 기계, 장비, 설비,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모두 디지털화해 디지털 자산으로 만든 뒤 데이터의 흐름, 운영 프로세스까지 디지털 트윈으로 관리해야 한다. 즉, 대부분의 업무를 디지털 트윈에서 검증하고 여기에서 효용이 입증된 기능과 의사결정을 실물 공장에 적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디지털 트윈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제품 개발, 공장 구축, 공장 운영 등 단계에서의 활용을 넘어 궁극적으로 SDF로의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질 것이다. 제조업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디지털 트윈에 투자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