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의 작품 ‘임금원’. 1938년에 출간한 한국 최초 원색 화집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에 수록된 작품.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한국 미술에서 유화 물감으로 그린 회화의 역사는 100년이 조금 넘었을 정도로 짧다. 이런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한 화가들은 일본 유학파들이었고, 그중 한 명이 오지호(1905~1982)다. 오지호는 1938년 한국 최초의 원색 화집 ‘오지호, 김주경 2인 화집’을 펴냈고 ‘순수회화론’, ‘구상회화선언’, ‘현대회화의 근본 문제’ 등을 통해 진지하게 그림을 탐구했다. 그런 그의 작품과 기록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15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오지호와 인상주의: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는 2025년 오지호 탄생 120주년을 맞아 전남도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기획했다. 오지호가 일본 동경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의 졸업 작품으로 그린 ‘자화상’(1931)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만든 데스마스크와 유품까지,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 100여 점과 기록 100여 점이 전시된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15일 개막한 ‘오지호와 인상주의: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의 전시 전경.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오지호의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해 유럽은 물론 일본까지 전파된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회화론을 통해 “회화는 빛의 예술이며, 태양에서 태어났다”고 밝힌 그는 한국의 초가집, 자연과 남도 바다의 풍경을 인상주의적 기법으로 담았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남향집’은 이런 한국 20세기 미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밖에 1938년 화집에 수록된 ‘임금원’, ‘처의 상’ 등을 볼 수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남향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1978년 작품 ‘여수항 풍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전시는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인상주의를 탐색하다’는 1920년대 동경예술대학 유학 시절부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초기 작품들을, 2부 ‘남도 서양 화단을 이끌다’는 해방 이후 산 풍경, 항구와 배를 그린 바다 풍경, 꽃과 식물 등 남도 서양 화단을 주도한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3부 ‘한국 인상주의를 구현하다’는 1970년대 이후 작품으로 유럽 여행에서 본 풍경, 유작인 미완성 작품 ‘쎄네갈 소년’(1982)을 볼 수 있다.
초가집, 감나무 등 한국의 풍경을 인상주의 화법으로 담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오지호의 작품 ‘남향집’이 보인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오지호는 1930년대에는 개성 송도고보에서 미술 교사를, 해방 이후에는 조선대 미술과 교수를 지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전시장 속 기록을 통해 그가 한국어문교육연구회를 세우고 국한문혼용운동을 펼치거나, 우리문화재보존운동에 나선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또 1950년대 광주 무등산 원효사가 불에 탔을 때 재건하는 과정에서 그린 ‘아미타후불탱화’도 전시된다.
오지호가 일본 동경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를 졸업하며 그린 자화상(1931). 도쿄예술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오지호가 생전에 사용했던 이젤, 팔레트, 작업복이 전시된 모습.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일본과 프랑스 인상주의에 관한 작품이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일본 도쿄예술대 교수였던 오카다 사브로스케, 후지시마 다케지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을 오르세미술관이 개발한 가상현실(VR)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VR기기로 감상할 수 있다.
28일에는 김이순 한국미술사연구회 회장, 히로시 쿠마자와 도쿄예술대 교수,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관리과장,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김허경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참여하는 국제 학술 세미나 ‘프랑스, 일본, 한국의 인상주의 미술’이 열린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