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포상’을 잘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인데, 피하고 싶거나 어려운 일을 완수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십수 년이 흐른 지금도 피하고 싶거나 어려운 일을 앞두면 다이어리 한편에 목록을 만든다. ‘○○○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 그 목록은 창피할 만큼 소소해서 드라마 보며 배달 음식 먹기, 영화관 가기, 코인노래방 가기, 친구들 만나기, 여행 가기, 대체로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끝은 있다. 이 구간이 그렇듯, 삶 자체도 그러하다. 막막한 ‘덩어리’들을 풀어헤쳐 스스로 야무지게 격려하고 포상하다 보면 아득하기만 했던 시기도 지나 있을뿐더러, 최소 그 절반은 긴장이나 걱정, 두려움 대신 설렘과 기대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때론 멀리 보는 것보다 가까이 보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그 뒤에 어떤 피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당장 가까이 있는 행복을 본다. 어차피 삶은 ‘퀘스트’의 연속이고 지금 이 걱정이 끝나도 다른 걱정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행복한 하루살이가 되기를 택하겠다.
당장 내년, 5년, 10년 뒤의 내가 어디서 어떻게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기대될 것 없는 하루의 끝, 맛있는 저녁을 먹고, 어려운 일을 마친 날 혼자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이 당장의 업무일지, 육아의 고민일지, 삶의 고뇌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순간들만큼은 작고 잦게 행복할 것이라는 것.
이 시기도 삶도 ‘끝’은 있지만, 삶은 결코 그 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올 한 해도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덩어리진 불안을 풀어헤쳐 그 구간 구간, 스스로 살뜰히 포상하기를 바란다. 통과할 시간이 고될수록 그 기대들은 달콤할 것이다.
2024년, 아직 서른하고도 일곱의 ‘하루’들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