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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없다[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입력 | 2024-11-24 23:06: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최근 신종 사기가 급증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면 평생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꼬드겨 퇴직자들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힌다는 내용이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장인 시절에 우연히 접한 얘기 하나로 상당 기간 고통에 시달렸다. 당시에 가까운 지인이 저평가된 부동산이 있다며 추천해 줬는데, 나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마침 노후를 고민하고 있어 가진 돈을 몽땅 털고 대출까지 받아 땅을 샀건만 알고 보니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 후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터라 사기라는 말만 들으면 촉각이 곤두선다.

왜 오랫동안 회사에 몸담았던 퇴직자들은 거짓된 정보에 속는 것일까. 언뜻 따져봐도 계산이 맞지 않는 구조인데 정말 몰라서 꼬임에 넘어가는 걸까. 나는 그 이유가 세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주변에 사람이 없다. 퇴직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어제까지 함께했던 선후배들도, 같이 일했던 업무 파트너들도 퇴직을 기점으로 모두가 떠나간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해도 전과 같지 않은 주머니 사정은 갖가지 계산을 하게 만든다. 찻값은 어찌할까, 먼저 말했으니 내가 내는 게 맞는 걸까. 그럴수록 퇴직자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턱이 없다. 기껏해야 얻는 자료는 포털 사이트의 기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추천하는 영상이 전부인데 이게 가짜 뉴스여도 분별해 낼 재간이 없다. 회사로부터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동료들에게 시시각각 사는 얘기도 듣지 못하니 점차 바보가 되고 만다.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홀로 내린 결정은 실패를 부르기 십상이다.

둘째, 사람을 쉽게 믿는다. 보통의 회사에서는 동료들 간에 속고 속이는 광경은 거의 접할 수 없다. 가끔 의아한 부분이 있더라도 나중에 알고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면 결국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회사 밖은 다르다.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나 간혹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다. 내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목적의 십중팔구는 내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 직장생활이 유일한 사회 이력인 퇴직자로서는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외로운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이 감사하게 느껴져서 급기야는 상대방을 의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셋째, 삶이 불안하다. 확실히 퇴직하고 나면 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진다. 내가 가진 자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고정 수입이 사라지는 현실은 퇴직자를 한없이 위축시킨다.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고 창업은 망할까 봐 두려워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갖은 궁리를 다 해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마당에 일정한 수익을 보장한다는 누군가의 제안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기만 하다. 안정적인 노후 대책이라는 말보다 퇴직자들에게 더욱 간절한 단어는 없다. 풍요로운 노후를 약속해 준다면 부담이 되더라도 기회를 잡겠노라고 결심한다. 앞서서 이득을 봤다는 사람까지 보게 되면 설마 했던 의구심이 마침내 강한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수십 년 성실하게 일만 한 퇴직자들이 사기로 피해를 보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먼저 지나치게 좋은 제안은 일단 경계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에 쉽게 벌 수 있는 돈이란 있을 수 없다.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고 높은 이익을 담보하는 상품이 있다면 소개하는 그가 모조리 사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땅은 부자들로 넘쳐 났을 것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는 행운은 동화책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음은 돈이 오가는 문제 앞에서는 즉각적인 결론을 피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퇴직자들이 가지는 조급함이 퇴직 후 실패의 주요 원인이듯 투자에서도 성급한 태도는 결과를 그르치게 할 뿐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족과 친구, 전문가와 상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자만의 생각은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냉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지 않은 퇴직자가 노후 걱정에 무리수를 두다가 그나마 가진 돈까지 잃고 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한 나의 행동이 의도치 않은 결말을 불러오는 것보다 더한 아픔이 어디 있으랴. 노후 자금을 호시탐탐 노리는 각종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말고 항상 신중하게 판단하셨으면 좋겠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