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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이재명의 ‘존명 정치’, 그 끝은(Ⅱ)

입력 | 2024-11-24 23:21:00

선거법 위반 중형에 “결코 죽지 않는다”
오늘 위증교사 1심이 더 큰 분수령
어떤 결론 나오든 결국 그 자신의 업보
‘尹의 업보’와 맞물려 나라만 골병 드나



정용관 논설실장


그나마 낮은 줄 알았던 첫 번째 허들에서의 예상 밖 중형에 휘청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장외 집회 메시지는 “펄펄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을 때의 복귀 일성도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총선 전 ‘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 대표에게 늘 정치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장이고, 그 속에서 ‘나 이재명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끈질긴 생명력으로 대선에서 지고도 170석 원내 1당을 완벽한 자신의 아성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불의의 일격을 받았다. 이번 판결을 놓고 “이재명은 죽었네, 아니네” 등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정파적 관점을 넘어 ‘사법의 탈(脫)정치화’ 시도라고 해석한다. 정치가 사법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고 판결에도 영향을 끼치려 한 것에 대해 사법부가 강한 경종을 울린 것이란 얘기다. 사법이 정치에 우롱당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이번 판결 직전에도 “법관 출신 주제” 운운하다 검찰 예산은 깎고 대법원 예산은 올려주는 식의 때리고 어르는 행태로 사법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정치가 세지만 사법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존재감은 확실히 보여준 것 같다.

이 대표의 “골프, 사진은 조작” “국토부 협박” 등의 발언에 대한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대해 별 이의는 없다. 거짓인 듯 아닌 듯한 이 대표의 말재주가 자승자박이 된 꼴이다. 다만 필자 주변의 식자층 일각에선 “0.73%포인트 차 대선 패자에 대한 과한 처분 아니냐” “유권자를 우롱했지만 대선 출마까지 봉쇄하는 게 비례 원칙에 부합하는지 의문” 등의 반응도 꽤 들려 온다. 물론 ‘여의도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해 온 이 대표가 과연 ‘패자’가 맞느냐는 반론도 있다. 결국 2심 재판부가 ‘법 논리’에 충실할지, ‘정치적 고려’도 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짜 분수령은 오늘 나올 위증교사 1심 재판 결과다. 보수 진영에선 더 센 징역형을 확신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첫 재판부가 징역형의 길을 열었으니 두 번째 재판부는 부담이 덜할 것이란 주장이다. 앞의 판결이 뒤의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유죄든 무죄든,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위증교사 재판부는 그들대로 독립적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 대표로선 내심 위증교사 1심에서라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형을 면하고 선거법 2심에서의 반전을 꾀하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겠지만 이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여러 정치공학적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이 대표는 지난 총선 때 8석만 더 얻었으면 하고 땅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임기 단축 개헌이든 뭐든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을 것이다. ‘포스트 이재명’ 얘기도 많지만 아직은 섣부른 얘기다. 설사 이 대표가 낙마하더라도 친명들은 더욱 똘똘 뭉쳐 친명 내에서 대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들 또한 대선보다 대선 1년 뒤 치러질 총선 공천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국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이 대표의 ‘존명 정치’는 시즌2를 맞고 있다. 이대로 종영의 길을 걸을지, 극적 회생의 길을 찾을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절체절명의 위기임은 분명하다. 이는 그의 업보(業報)이기도 하다. 숨진 김문기 씨 모친의 오열, 총선 공천 때 속절없이 목이 잘린 비명계의 원한, 170석 의원들과 ‘개딸’ 강성 당원들을 자신의 사법 방패로 삼으려 했던 공적 의식의 결여….

허나, 이 대표는 자신의 아성인 민주당에서 나와 홀로 광야에 설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70년 전통의 민주당도 한 개인의 ‘존명 정치’ 굴레에 얽매인 셈이다. 국가 위기의 경고음은 점점 커지는데 꽃피는 내년 봄까지도 자기 생존밖에 모르는 ‘이재명의 업보’와 자기 확신밖에 모르는 ‘윤석열의 업보’가 맞물려 나라는 점점 더 골병 들어 갈 것이란 암울한 예감이 든다. 누가 살고 죽는지는 그들의 문제지만 둘의 업보는 나라의 업보가 돼 가고 있다. 정치에서 절대적 배제, 절대적 옹호의 내전은 국가적 자해의 길인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그래도 판결은 판결이다. 어떤 경우든 최소한의 정치는 작동하길 바랄 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