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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추도사’도 없었다… ‘사도광산’ 뒤통수 맞은 정부

입력 | 2024-11-25 03:00:00

야스쿠니 참배 日대표 ‘내빈인사’
‘강제동원’ 언급도 ‘사죄’도 없어
정부, 추도식 전날 뒤늦게 “불참”



피해자 빠진 ‘반쪽 추도식’… 한국 정부-유가족 불참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 및 유가족을 위해 마련된 자리들은 텅 비어 있다. 한국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인사가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하기로 하자 이에 반발해 불참을 결정했다. 이에 사도광산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도 별도의 추모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사도=뉴스1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행사에 불참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약 15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돼 차별받은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의 표현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추도식은 앞서 7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우리 정부에 매년 개최하겠다고 약속한 핵심 조치였으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인사를 참석시키면서 첫해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는 파행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히려 추도식 직전인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을 통해 “한국과 정중한 의사소통을 실시해 왔다.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며 행사 파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

외교부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 전날인 23일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계획을 밝혔다. 당초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일본에 도착한 정부 당국자들과 유가족 9명은 25일 사도광산 옛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는 22일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 참석 일본 대표로 발표한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이 논란이 되자 일본 측에 인사 교체를 요청했으나 일본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추도식에서 일본 대표의 추도사 내용에 추모와 반성 등의 의미를 담아 달라는 정부 요청에도 일본은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이 참석자를 포함한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진정성 있는 조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를 우리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면서 ‘총체적 외교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日대표 ‘강제동원-사죄’ 언급 안해… 정부, 日 약속위반에 “협의”만


[사도광산 외교 참사]
야스쿠니 참배전력 日대표 논란에… 정부 “日 고위급 참석” 안일 대응
전시물에 ‘강제’ 표현 빠져도 방관
日, 한국측 좌석 치워달라 요청 거부… 되레 “韓 불참 유감” 파행책임 돌려

2022년 일본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논란이 됐던 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가운데)이 24일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 입장하고 있다. 사도=뉴스1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라는 형식으로 사도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 노동자를 언급했다. 이를 ‘추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들이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 표현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 강제 노역-사죄 언급 없이 오히려 “불참 유감”

이는 양국 합의로 올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과 동시에 사도광산 인근에 설치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관의 전시물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당시 일본 측은 전시물에 모집, 알선, 징용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한 사실을 적시했다. 또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자와 비교해 위험한 작업에 종사한 사람 비율이 높았다”며 차별받은 내용도 넣었다. 우리 정부는 전시물에는 ‘강제’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강제성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가 불참한 이번 행사의 ‘내빈 인사’에는 이런 내용조차 없었다. 추도식은 ‘개회-묵념-개회사-인사-내빈 인사-헌화-폐회’ 순으로 40여 분간 진행됐다. ‘추도식’ 명칭과 달리 ‘추도사’라는 식순 자체가 없었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와 유족이 불참해 좌석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었다. 정부는 빈자리가 된 의자를 치워 달라고 했지만 일본 측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한국 때문에 행사가 파행됐다며 책임을 한국에 돌리는 분위기가 크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일본 측은 성심성의껏 대응해 왔다.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외무성의 한 간부는 교도통신에 “한국이 국내 여론에 과잉 반응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 “정부, 진정성 없는 日 조치에도 안일 대응”

정부는 7월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전 조선인 강제 노역 관련 전시시설 마련 등 일본의 ‘선제적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전시물의 ‘강제’ 표현을 비롯해 추도식 준비 과정 등 일본의 약속에 대한 이행 전반이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한국 정부와 유가족들이 추도식을 ‘보이콧’했다.

특히 일본이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된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처럼 우리 정부가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되면서 총체적인 외교 부실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일본의 약속 이행에 진정성이 없다는 논란이 계속 제기됐지만 우리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 측면은 있다”고 했다. 전시시설 설치, 추도식 개최 등 큰 틀의 약속 이행 여부 외 일본의 세부적인 후속 조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

당초 양국이 합의한, 매년 7, 8월경 개최될 예정이던 추도식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추도식의 명칭도 추도 대상이 불분명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확정됐다. 유족의 참석 경비도 전부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추도식이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의 발언에도 정부는 “일본과 협의 중”이라는 반응만 보였다.

일본 정부는 추도사에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사죄나 유감 등을 언급해 달라는 정부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추도식 이틀 전인 22일에야 정부 대표를 통보했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 논란이 불거진 22일 밤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일본이 수용해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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