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박물관에 강연차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전시실을 둘러봤다. 아이들이 그린 서툴고 귀여운 작품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닷물고기가 주제인 듯 도화지마다 온갖 물고기가 그려져 있었다. 때마침 강연 주제가 물고기라서 유심히 보다가 재밌는 걸 발견했다. 모든 꽃게와 새우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식탁에 오른 꽃게와 새우 요리의 영향 때문인지, 만화나 그림책에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그렇게 인식하는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 덕분에 강연 시간에 아이들 그림을 언급하며 게와 새우가 익으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바다생물 이름을 풀이한 백과사전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꽃게는 예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게에 비해 껍데기가 윤기가 나면서 예쁘게 보여 ‘꽃’자를 붙였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꽃게의 이름에 붙은 ‘꽃’은 식물에 피어나는 꽃과는 상관이 없다. 꽃게 어원은 ‘곶’과 관련이 있다. 곶은 뭍의 일부가 바다 쪽으로 뾰족하게 뻗은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간절곶, 호미곶, 장산곶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꽃게의 등딱지 양쪽 끝에 가시가 돌출돼 있어서 곶게라 부르다 나중에 꽃게로 변했다. 성호사설에는 ‘곶해’라 기록돼 있다.
통발로 잡은 꽃게는 어선의 어창에 보관해 육지로 운송한다. 어창에서부터 먹이 활동을 못 하므로 유통 과정 내내 자기 살을 소진하며 생존한다. 반면 자망이나 닻자망으로 잡은 꽃게는 냉동 혹은 급랭 후 유통된다. 활꽃게와 냉동꽃게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잡은 꽃게를 신속하게 구입한다면 활꽃게를, 어획 후 유통기간이 길다면 냉동꽃게가 좋다. 수족관에 오랫동안 살아있으면 살이 빠져서 수율이 떨어지므로 활꽃게가 급랭한 꽃게보다 반드시 더 좋은 건 아니다.
조선시대는 간장게장 위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는 부패 속도가 빠르고, 외피는 껍데기에 둘러싸여 말리기도 어려웠다. 대게는 다리를 찐 후 건조해서 유통했으나, 꽃게는 다리에 살이 많지 않으므로 쪄서 말리는 방식은 실효성이 없었다. 간장게장을 담가야 내륙에 있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었다. 선비·부인·자녀의 예절을 다룬 ‘사소절’(이덕무·1775년)이라는 책이 있다. 선비에게 보기 흉하니 게 껍데기에다 밥 비벼 먹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달리 생각하면 게딱지에 밥 비벼 먹는 건 오랜 전통이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