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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노인 87%, 마약성 진통제 등 복용”

입력 | 2024-11-26 03:00:00

수면진정제 등 중추신경계用 약물, 입소 노인이 재택보다 많이 복용
加 32%-호주 57% 등 해외와 큰 차이… “치매 많고 시설 인력 부족 탓” 지적




“요양원에서 ‘약을 안 드시면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고요.”

경기 수원시에 사는 임모 씨(30) 가족은 중증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지난해 10월 요양원에 모셨다. 임 씨의 할머니는 요양원 입소 후 기존에 복용하던 약에다 신경안정제 등 2, 3가지 약을 추가로 복용 중이다. 임 씨는 “할머니가 멍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지만 돌볼 만한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집으로 모시고 오기도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요양원 등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이 마약성 진통제 등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연간 1일 이상 복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요양원 등에서 입소자들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약물을 과도하게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요양원 노인 87%가 중추신경계 약물 복용

2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시설 노인 중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연간 1일 이상 복용한 비율이 86.8%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중추신경계용 약물은 뇌와 척수 등에 작용하는 약물로 마약성 진통제, 항정신병제, 항불안제, 수면진정제, 항우울제 등이 포함된다.

시설 입소 노인 중 연간 28일 이상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복용한 비율은 76.7%에 달했다. 특히 항정신병제는 연간 1일 이상 복용한 비율(53.2%)과 연간 28일 이상 복용한 비율(50.7%)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항정신병제를 복용하는 시설 입소 노인 대부분이 장기 복용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항정신병제는 망상, 환각, 환청 등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물이다.

반면 집에서 머무는 노인은 시설에 머무는 노인보다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덜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1일 이상 복용한 비율은 77.2%로 시설 입소자보다 9.6%포인트 낮았다. 28일 이상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복용한 비율도 집에서 머무는 노인이 56.6%로 20.1%포인트 낮았다.

이번 연구는 지난해 65세 이상 장기요양수급자 89만118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중 시설 수급자는 18만7077명, 재가 수급자는 70만4109명이었다.

“해외와 비교해도 과도한 약물 사용”

국내 장기요양시설은 해외와 비교해도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시설 입소 고령자의 중추신경계용 약물 복용률은 캐나다 31.7%, 호주·뉴질랜드 56.9%, 유럽 72.2%, 핀란드 78.0% 등으로 한국(86.8%)보다 낮았다.

시설 측은 높은 치매 환자 비중과 시설의 인력 부족 때문에 중추신경계용 약물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요양원은 치매 환자 비중이 높다 보니 배회, 망상 등을 관리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력이 충분하면 그림치료 등 행동치료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약물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중추신경계용 약물은 중독과 의존, 낙상 및 골절 위험, 인지기능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세심하게 투약하고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