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DDP 루프톱 투어 사전 공개 행사 모습. 뉴스1
며칠 전, 서울의 하늘을 걸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 10주년을 맞아 특별히 개방된 루프톱 투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서울 생활 16년 차인 내가 수없이 지나쳤던 이 공간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쇼핑을 하기 위해, 혹은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이 공간이 29m 상공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88올림픽 당시 운동장은 이제 자하 하디드라는 또 다른 전설이 만든 미래적 건축물로 변모했다. 역명도 마찬가지다. 2, 4, 5호선이 만나는 ‘동대문운동장’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운동장의 기억은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역 안에는 88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다. 여전히 수십 개의 스포츠용품 가게들도 성업 중이다. 특히 축구용품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빌 때 이곳의 활기는 과거 운동장이 품었던 열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하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스포츠 애호가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5000년이라는 깊은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마주친다. 최신식 빌딩 건설 중에 유적이 발굴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브라질 출신인 내가 특히 매료되는 점은 한국이 보존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옛것을 지키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DDP가 바로 그 좋은 예시다. 옛 성곽과 운동장을 곳곳에 남기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한국의 유연한 문화재 활용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내 고향 브라질은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인들이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시작된 이 짧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보존’을 ‘현재와의 단절’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된 건물은 박물관이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마주하는 역사는 다르다. 그것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때로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과거의 흔적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편의와 아름다움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특별한 지혜처럼 느껴진다.
서울에서는 과거와 현대의 시간, 공간이 겹쳐진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성벽이 현대식 빌딩 사이로 이어지고, 고궁 앞에서 첨단 전자제품이 팔린다. DDP의 지붕 위에서 바라본 서울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한 도시가 어떻게 과거를 품으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해답을 발견한 듯했다.
동대문운동장 시절, 이곳에서 울려 퍼지던 함성과 환호는 이제 패션쇼와 디자인 전시회의 박수 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스포츠 경기장이었던 곳이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고, 관중석이 있던 자리에 디자인 스튜디오가 들어선 것이다. 내년부터는 이 하늘 산책로가 390m로 확장된다고 한다. 더 넓어진 하늘길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될까. 아마도 그곳에서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의 층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