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자 추방 놓고 갈라진 美… 비상사태 선포-軍 동원 가능성 범죄 경력 있는 불법 이민자 체포… 최소 1100만 명 추정 “우선 추방은 中남성” 소문 속… “일단 피하자” 망명 신청 급증 민주당 지자체장 “내가 감옥 간다”… 고물가 등 美 경제 타격 우려도
미국 내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는 임시 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워싱턴의 한 호텔. 주요 도시의 불법 이민 수용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군을 동원한 체포 작전 등을 통한 대규모 추방을 공언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미국으로 가려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이 20일(현지 시간) 멕시코 치아파스주 타파출라의 도로를 걷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불법 이민자의 신규 입국을 막고 미국 내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또한 대대적으로 추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타파출라=AP 뉴시스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즉각 불법 이민자를 대규모로 추방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 현 수용 시설을 2배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미 곳곳의 민간 교도소 등을 수용 시설로 활용해 불법 이민자를 단속하고 수용한 뒤 미국 밖으로 보낸다는 계획이다.
● 취임 첫날 추방 행정명령
올 2월 조지아주의 여대생 레이큰 라일리는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민자 호세 이바라에게 살해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20일 이바라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자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국경을 지키고 범죄자와 폭력배를 몰아낼 때”라고 썼다.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8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을 동원할 것’이라는 SNS 글에도 “진실(True)”이라는 답글을 달았다. 미 대통령은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국가안보나 공공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하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또 대통령, 50개 주 주지사는 주 방위군을 치안 활동에 동원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과 2기 내각은 이미 대규모 추방 준비에 들어간 상황이다. NBC방송은 당선인 측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 최대 5건의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민 문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최우선 과제”라며 “선거 공약을 빠르게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대대적인 쇼가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 불법 이민자 공포 확산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이민자는 약 4590만 명. 이 중 23%인 약 1100만 명이 불법 이민자로 추정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첫 임기 때보다 강력한 불법 이민자 대책을 예고하면서 미국 내 이민자들의 추방 공포는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5일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미국에 불법으로 입국한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이 크게 늘었다. 망명이 승인되지 않더라도 심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추방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 시민권자와의 결혼을 서두르는 이민자들도 늘어났다. 또 영주권이 있는 이민자들의 시민권 취득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 전역의 차이나타운에는 군 복무 연령의 중국인 남성 이민자들이 최우선 추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16일 NBC방송 또한 당선인 측 관계자를 인용해 “국가안보 위협에 따라 불법 체류 중국인들이 첫 추방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이번 대선 유세 중 “군 복무 연령인 불법 이민자들이 중국에서 오고 있다”며 “이들은 미국에 군대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또한 내전을 피해 미국에 입국한 아이티 이민자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임시보호지위(TPS)’ 프로그램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프링필드 등 미국 내 아이티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는 이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 민주당 지자체장 “용납 불가”
민주당은 이 같은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소속 주지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는 이른바 ‘블루 스테이트’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을 두고 극단적인 갈등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소속인 케이티 홉스 애리조나 주지사는 19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지역 사회에 해를 끼치고, 위협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잘못된 정책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선인 측과의 정면 대결을 예고했다.
콜로라도주 덴버의 수장인 민주당 소속 마이크 존스턴 시장 역시 “대규모 추방에 맞서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그 제안은 수락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는 불법 이민자 추방에 협조하지 않는 주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 예산을 우선 삭감하겠다고 경고했다.
불법 이민자 상당수가 미국인이 기피하는 저소득 일용직 노동을 담당한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대규모 추방이 물가 상승 등 경제적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싱크탱크 피터슨연구소는 올 9월 보고서에서 “130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추방되면 2028년까지 미 국내총생산(GDP)이 1.2∼7.4%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