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에 ‘식물 정부’] “극단적 정쟁에 정책업무 한계” 대기업-로펌으로 ‘탈출 러시’
중앙 부처 공무원 A 씨는 26일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임기 3년 차에 정권 말과 같은 모습들이 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데는 공무원들의 ‘퇴직 러시’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을 떠나지 않더라도 민간 기업보다 낮은 급여, 대민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무사안일, 보신주의로 업무에 임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또 다른 중앙 부처 과장급 B 씨는 “극단적 여소야대에 대통령 지지율까지 하락하면서 공직 사회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그렇다 보니 공무원들도 일할 때 자연스레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보상은 적고, 정책은 막혀” 실무 공직자들 줄잇는 탈출
〈중〉 공무원 ‘퇴직 러시’
행시 출신 MZ사무관, 로스쿨 시험… “회계사 준비” 붙기도 전에 사표
‘1년도 안 돼 퇴직’ 3년새 2배로
“인센티브 제공 등 동기 부여 필요”
국과장급뿐만 아니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저연차 공무원들의 공직 이탈 역시 잇따르고 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아직 근무 기간이 3년이 되지 않은 중앙 부처 사무관 A 씨는 최근 로스쿨 면접 시험을 봤다. 그는 “업무 강도는 센데 정작 제대로 수립되는 정책들은 없어 큰 보람이 없다”며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A 씨는 로스쿨 합격 결과를 보고 계속 공직에 남을지, 로스쿨로 진학해 공부를 할지 결정할 예정이다.행시 출신 MZ사무관, 로스쿨 시험… “회계사 준비” 붙기도 전에 사표
‘1년도 안 돼 퇴직’ 3년새 2배로
“인센티브 제공 등 동기 부여 필요”
젊은 사무관들 중에서는 전문직 이직을 고민하는 사례가 많다. 근무 기간이 5년이 넘지 않은 사무관 B 씨는 “회계사나 변호사 친구들보다 공부를 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장 손에 쥐는 연봉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직 대신 전문 자격증 취득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1년도 안 돼 공직을 떠나는 공무원 수는 3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재직 기간이 1년이 안 된 국가공무원 퇴직자는 3021명이었다. 2020년에는 채 1년이 안 돼 관두는 이들은 1583명에 그쳤다. 재직 기간을 5년 미만으로 넓혀 보면 퇴직자는 1만3568명으로 2020년(9009명)의 1.5배였다.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취업 심사를 받은 공무원은 2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 심사를 받은 공무원은 1126명으로 2022년(917명)보다 22.8% 증가했다. 공무원들의 이탈 움직임은 현 정부의 지지율이 크게 추락하고 임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더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행정부의 권한과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관료들의 성취감도 함께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위급 관료들은 자칫 ‘순장조’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크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업 등 민간조직에서는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훨씬 많은 데 비해 공무원 조직에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비교적 적다”며 “더군다나 지금은 정치권의 협치가 잘 이뤄지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공무원들이 성취감 측면에서 더 큰 장벽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고 공무원들이 성과를 냈을 때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