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를 10년 가까이 보좌해온 법률 고문 보리스 엡스타인(42)은 ‘트럼프의 투견’이라고 불린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기밀 유출, 성추문 입막음 등 주요 사건의 소송과 여론전을 엡스타인이 주도했다. 변호사이자 정치전략가인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 공보 책임자였고 백악관에서 나온 뒤에도 막후 실세로 활약했다. 최근 트럼프 재선과 함께 검찰이 줄줄이 기소를 취소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엡스타인은 취임 준비가 한창인 트럼프의 마러라고 사저에 가장 오래 머무는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인 트럼프처럼 논란 일으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엡스타인이지만 최근 2기 내각 인선을 두고 궁지에 몰렸다. 그가 장관을 희망하는 인사들에게 사적으로 연락해 발탁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재무장관에 내정된 스콧 베센트도 몇 달 전 엡스타인으로부터 “트럼프에게 추천해줄 테니 컨설팅비로 매월 3만, 4만 달러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 중에는 맷 게이츠 법무장관 후보자도 있다.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 등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에 부딪혔고, 상원 통과가 어려워 보이자 지명 8일 만에 사퇴했다. 엡스타인은 게이츠와도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는 정권 재창출의 일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런 부적격 인사 추천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정권 주변에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의 신임이 두터울수록 이들이 부르는 ‘가격’도 높아진다. 대통령이 이런 측근들을 단호히 내치지 않으면 충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한몫 챙기려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이들이 득세하는 한 트럼프가 머스크 같은 기업인을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중용한다고 한들 정부 효율이 좋아질 리 없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을 가까이에 뒀다가 낭패를 보고 정권마저 흔들리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