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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윤 대통령은 왜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입력 | 2024-11-27 23:21:00

도덕성 흠집 나면 지지율 회복 어려워
尹도 盧처럼 ‘실패한 대통령’ 될까 우려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할 게 아니라
검찰의 ‘정치적 중립’ 추진한 盧 본받길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주자 시절인 2021년 9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른 적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서거 때부터 추모식마다 등장하는 곡이다. 높은 음까지 내진 못했지만 “2009년 대구지검에 있을 때,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때 내가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했다.

노무현 연설을 다 외울 정도로 윤 대통령은 정말 고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무현 영화를 보고 혼자 두 시간을 운 일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선 전, 한 인터넷 매체 기자와 통화 녹음에서 부부가 다 노무현 팬이라며 했던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특히 국가지도자로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어딘가 닮아 있고 따라 하려 애쓰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한 주간지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고난 정치적 감각은 메시이고 호날두인데 문 정권 사람들은 그걸 따라 하려고 하지만, 그만큼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특한 해석이다. 6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1위가 노무현이긴 해도 (2위는 박정희, 3위는 김대중) 살아생전 그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열린우리당이라는 ‘대통령당’이 생겼다 사라졌으며, 가족과 측근 관리에 실패해 세상을 등진 아픔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 노무현 같은 정치적 감각이 있다면, 시대정신을 읽고 ‘공정과 상식’을 대선 구호로 들고나와 다수 국민을 열광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무현도 윤 대통령처럼 임기 1년도 안 돼 직무수행 평가가 20%대(한국갤럽 조사)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은 아는지 의문이다. 2004년 초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고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거대여당이 됐음에도 노무현은 2004년 2분기 반짝 34% 지지율을 올렸을 뿐, 임기 말까지 대부분 30%를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취임 직후 줄줄이 터진 측근 비리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처럼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대선 구호로 들고나왔다. 도덕성과 연계된 가치 쟁점은 한 번 흠집이 나면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경제성장 같은 대선 공약은 기대가 환멸로 바뀌기까지 3년은 기다려 줄 수 있으나 알고 보니 ‘내로남불’이라는 배신감으론 지지율 반등도 힘들다. 최준영 인하대 교수가 2014년 논문에서 밝힌 연구 결과다.

집권 4년 차 12%까지 지지율이 추락했음에도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진상규명법·언론관련법을 개혁입법이라며 밀어붙였다. 성공할 리 없다.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강한 야당(지금의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개혁을 고집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다.

윤 대통령이 진정 노무현을 좋아한다면, 정치 감각이 아니라 지지율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측근 비리를 사과하고 국민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방법이 없지 않다. 노무현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말없이) 고집할 상황이 아니다. 김 여사가 일반 국민과 똑같이 검찰에 수사 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제라도 공정과 상식이 살아 있음을 입증하기 바란다.

그러면 실망했던 지지층이 돌아온다. 그 힘으로 ‘양극화 해소’라는 윤 대통령의 새 국정과제에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고, 정권 재창출의 희망도 가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못할 바에야 어차피 김 여사에 대한 수사는 피할 수 없다. 정권을 뺏기기 전에, 차라리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을 때 받고 넘어가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를 통해 윤 대통령은 검찰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이 좋아했던 노무현은 청와대가 간섭하지만 않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이뤄진다고 믿은 대통령이었다. 청와대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검찰개혁을 추구했다던 노무현이 지금 검찰 출신 대통령에, ‘검사 위에 여사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을,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노무현이 최고의 관료로 꼽았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노무현의 대체불가능한 장점이 “그럼 내가 생각을 바꾸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들어보고 맞다 싶으면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도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반박해 주는 것을 즐겼다고 최근 저서에 적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래나 부를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