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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57곳 ‘수장 공백’… “국정과제 추진할 팔-다리 멈춘 셈”

입력 | 2024-11-28 03:00:00

[임기 반환점에 ‘식물 정부’] 〈하〉 공공기관 ‘리더십 부재’ 장기화
강원랜드 등 24곳 6개월 이상 공석… 내년 1분기 38곳 추가 임기 만료
국정 지지율 하락속 지원자도 적어… 사업 지연-업무 혼선등 부작용 속출
“공백 길어지면 정책 표류 우려” 지적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은 손태락 원장이 벌써 3년 9개월째 기관장을 맡고 있다. 임기는 올해 2월 말까지였지만 후임 원장 선출이 늦어진 탓이다. 올해 7월 신임 원장 초빙 공고가 진행됐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강원랜드의 기관장 공백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말 이삼걸 전 사장이 임기 만료를 4개월 앞두고 사퇴한 뒤 벌써 11개월째 후임 사장 선임이 미뤄지고 있다. 올해 8월 뒤늦게 관련 절차 진행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구성됐는데 아직 후보자 공개모집 공고조차 게시되지 않았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후임 사장 공모와 관련해 구체적인 시기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6곳 중 1곳은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경영을 이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관장 공백이 6개월 이상 길어지고 있는 공공기관도 24개에 달한다. 공공기관 수장 공백이 부처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서 나타나면서 굵직한 사업 추진 지연이나 임직원들의 업무 효율 저하 등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정권 지지율 하락에 따른 행정부 업무 공백이 가장 하부 조직인 공공기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 기관장 공백 공공기관 57곳, “지원자도 끊겼다”

동아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전수 분석한 결과 이달 21일 기준 339개 공공기관(부설기관 12곳 포함)의 16.8%는 기관장 임기가 이미 끝난 것으로 조사됐다. 30곳은 기관장이 공석이었고 27개 공공기관은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관장 공백이 6개월 이상으로 장기화된 공공기관도 24곳으로 집계됐다.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벌써 1년 3개월째 새로운 관장을 찾지 못하고 있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도 기관장 공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기관장 공백을 겪는 공공기관은 올해 7월 81곳에서 4개월이 지난 현재 57곳으로 24곳 감소했다. 하지만 내년 1분기(1∼3월)까지 기관장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공공기관이 38곳이나 되는 탓에 기관장 공백 사태는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후임 사장 공모에 임추위 추천까지 수개월 전 완료됐음에도 주무 부처로부터 진행 상황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공기관장의 공백 현상은 대통령실 등 정권 차원의 인사 결정이 늦어지고, 한편으로는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기관장 지원자를 찾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현 정부가 임기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공공기관으로의 이동을 꺼리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A공공기관은 3개월 전 진행된 신임 기관장 후보자 공모에 주무 부처 출신 공무원이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해당 부처 관계자는 “공공기관장 중 연봉이 나쁘지 않아 주로 실장급 공무원이 기관장으로 가는 곳인데 실장급뿐 아니라 국장급 중에서도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관장 임기 3년이 끝난 뒤 다음 행선지도 중요한데, (국정 지지율이 낮은) 현 상황에서 중앙부처를 떠나는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업무 비효율에 내부 혼란도 커져

기관장 공백 장기화는 공공기관 업무 비효율과 내부 혼란을 키우고 있다. 반년 넘게 신임 사장이 선출되지 않고 있는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올 6월 말 부채가 1년 전보다 10%가량 늘고 부채 비율도 상승했다. 중앙부처 산하 B공공기관 관계자는 “임기 만료된 최고경영자(CEO)가 할 수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직원 인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승진 적체가 발생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데 소극적이라 사실상 기관장 공석이나 마찬가지”라며 “다음 기관장이 누가 될지에 대한 추측으로 회사 전체가 계속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C공공기관의 경우 기관장 공석으로 상위 부처와 업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개월 동안 중요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다가 최근 신임 기관장이 오고 나서야 전화 몇 통에 사업이 진척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기관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실과 소관 정부 부처가 기관장 인사에 대한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몸통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상황에서 팔다리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까지 리더십 부재가 길어지면 국가 정책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