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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유래에 대한 오해… 제사음식서 나온 게 아니다[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입력 | 2024-11-28 23:00:00

게티이미지뱅크


한식의 대표적인 특성은 밥상과 발효 문화다. 밥상 구조 안에서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항상 맛있는 국과 반찬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맛의 비결은 소금, 장, 양념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맛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간수를 뺀 천일염을 넘어 자염(煮鹽), 죽염(竹鹽)까지 다양한 소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 콩을 발효시켜 장을 만들고, 마늘, 고추, 파 등 재료를 이용하여 양념을 만들었다. 푸성귀나 남새를 양념으로 무쳐 먹다가 발효라는 생물학적 반응으로 세계 유일의 김치를 만들어 먹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이렇게 맛있는 반찬과 밥이 있으면 누구나 당연히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밥과 반찬을 따로따로 먹는 것보다 한 번에 먹는 것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더구나 이들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섞어서 먹는 게 아니라 서로 비벼서 맛이 잘 스며들게 하고 화학적으로도 결합하게 한다면 새로운 맛이 생겨날 수 있다. 윤활 작용을 하는 재료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밥과 맛있는 반찬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는 것이다. 이러면 향과 색깔이 더욱 좋아짐은 물론 맛도 나아진다.

이렇게 비빔밥은 우리나라의 밥상 구조와 반찬 문화, 고추장과 참기름이라는 장이 있었기에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올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비빔밥이 시의전서(是議全書)에 한자 골동반(汨董飯)으로 나온다고 하여 중국에서 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단순하다. 중국에 골동갱(汨董羹)이란 음식이 있다고 해서 우리 골동반이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인 것은 아니다.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먹으려다 생긴 음식이 비빔밥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역사적으로 맞지 않다. 제사 음식은 우리 전통 음식이 아니다. 농사철에 새참이나 점심을 들판에서 먹을 때, 편리하게 먹으려고 한데 비벼 간 데서 유래하였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 일 역시 거의 없었다. 집에서 비벼서 나가는 일이 밥과 국, 반찬을 따로 만들어 들판에서 펴 놓고 먹는 것보다 일이 적지도 않을뿐더러 먼저 비벼서 나가면 맛이 떨어진다. 비빔밥은 맛있는 밥, 나물과 반찬, 고추장이 있어야 한다. 이를 보면 전주비빔밥이 왜 유명한지를 알 수 있다. 비빔밥의 필요조건인 맛있는 밥, 다양한 반찬, 맛있는 나물, 고추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어느 비빔밥집 사장은 비빔밥이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는 음식이라 했다는데, 젓가락으로는 비빌 수가 없다. 오직 숟가락으로만 비벼야 고추장과 참기름의 맛이 나물에 잘 스며든다. 광복 후에 외국에서 공부한 많은 사람이 비빔밥을 영어로 ‘mixed rice vegetables’라 썼는데, 이는 비빔밥을 단순 섞음밥 정도로 본질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자 오래 노력한 끝에 이제 ‘bibimbap’이란 이름을 제대로 찾았다.

비빔밥은 한 끼 식사로 매우 훌륭한 음식이다. 맛과 영양, 건강을 다 충족한다. 한류가 대세인 이 시점에 비빔밥을 잘 시장화한다면 대표적인 K푸드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밥과 반찬, 나물을 소비자들이 고를 수 있게 하는 맞춤형 비빔밥으로 승화한다면 건강하고 맛있는 세계 음식으로 거듭날 것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