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6대 왕이었던 인조(仁祖)는 무능한 왕이었다. 다행히 신하 복은 많았다. 최고 리더인 왕이 무책임과 무능으로 일관하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나라의 버팀목이 된 ‘사우(四友)’가 있었기에 조선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사우’는 조익(趙翼), 이시백(李時白), 최명길(崔鳴吉), 장유(張維)를 가리킨다.
사우는 1623년 인조반정과 함께 조정의 핵심으로 진입했다. 반정의 공로로 정사공신 1등과 완성군에 봉해진 최명길은 이후 대제학, 육조판서, 삼정승을 두루 역임했다. 이시백은 서생의 신분으로 반정에 참여해 2등 공신과 연양군에 봉해졌고 인조 대에 병조판서, 형조판서, 호조판서를 맡아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발휘했다. 장유도 정사공신 2등과 신풍군에 녹훈됐는데 문장 실력이 뛰어나 대제학을 두 번이나 맡았다. 조선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대문장가를 일컬어 ‘상월계택(象月谿澤)’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 ‘계’가 장유다. 마지막으로 조익은 반정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인조반정으로 이조 좌랑에 등용된 후 대사성과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거치며 활약했다.
사우는 서인의 정통 본류에 속한다. 조선에서는 어떤 학통을 이었느냐, 누구의 제자냐가 정치적 힘을 좌우한다. 사우는 서인의 정신적 지주인 우계 성혼(成渾)과 사계 김장생(金長生), 서인의 거물 정치가 월정 윤근수(尹根壽)와 사제 관계로 연결돼 있다. 서인 정권에서 활동하는 데 최상의 백그라운드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상으로 살펴본 사우의 특성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 불확실성의 시대를 뚫고 나가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기존의 논리나 관행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시대의 변화를 주시하는 가운데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진리라고 믿어 온 것일지라도 과감히 벗어나고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도 중요하다. 비상(非常)의 시대에는 비상(非常)한 방법이 필요한데 다양성을 상실한 사회에서는 결코 ‘비상한 방법’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노력을 성공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창의성을 발휘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마음이다. 더욱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격변기에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어떤 미래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올바른 인식과 판단 능력을 갖춰 놓는 일이 중요하다. 마음의 역량을 배양하는 일에 주목했던 사우의 태도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4호(11월 1호) “리더의 빈틈을 메운 현명한 신하들”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