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펜싱 사브르 세대교체 시험대 알제리 월드컵서 구본길-오상욱 ‘빈자리’ 메우며 세계 1위 지켜 올림픽 경험이 자신감 원천 그랜드슬램도 당연히 욕심
파리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박상원(왼쪽)-도경동은 파리에서 자신들이 왜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의 새 얼굴로 발탁됐는지를 증명하며 한국 남자 사브르의 올림픽 3연패에 힘을 보탰다. 두 선수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사브르의 4연패를 이끌 주축으로 기대받고 있다. 진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형들이 없으면 또 없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로 통하는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파리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룰 때도 도경동(25)과 박상원(24)의 역할은 ‘감초’면 충분했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 이후 구본길(35) 오상욱(28)이 부상 관리를 위해 휴식을 택하면서 이제 남자 사브르 대표팀에서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는 도경동, 박상원만 남게 됐다. 갑자기 ‘주연’을 맡았지만 이들은 2024∼2025시즌 국제펜싱연맹(FIE) 첫 월드컵인 알제리 대회를 금메달로 시작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최근 만난 이들은 “올림픽 금메달의 감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했다. 도경동은 “사실 좀 쉬고 싶기도 했는데 집에 가면 가족들이 더 ‘정신 차리고 빨리 운동하라’고 한다”며 웃었다. 이번 알제리 월드컵에서 시니어 국제 무대 개인전 첫 메달(동메달)을 딴 박상원은 “지금처럼만 하면 형들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두 선수에게 이번 시즌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도경동은 “사실 경기를 뛴 시간은 5분도 안 됐을 거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경기를 보고 모든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에 경기에 안 뛰어도 다 뛴 느낌”이라며 “이번 시즌 첫 경기를 치르면서 확실히 올림픽에 다녀와 경험이 많이 쌓였다는 걸 느꼈다. 이대로만 간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도경동은 파리 올림픽에서 개인전 출전권은 받지 못했고 단체전에서도 결승전 7바우트에만 교체 출전했다. 그러나 실점 없이 5점을 가져오며 ‘신스틸러’로 자리매김했다. 파리 대회가 역시 개인 첫 올림픽 무대였던 박상원도 “올림픽에서 팀원들과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그 믿음 하나로 실력 더 발휘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원우영 남자 사브르 대표팀 코치는 “상원이는 경기의 활력소가 되는 1번 타자라면 경동이는 결정적 상황에 집중력이 좋은 마무리 투수”라고 평했다. 원 코치는 한국 사브르 선수 최초로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원 코치는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그랜드슬램 하려면 10년은 기본으로 걸렸는데 두 선수는 4, 5년 안에 욕심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도경동은 “(한국에 잘하는 선수가 늘어) 우리가 다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다들 ‘대표팀에만 가면 나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때도 서른 살이 채 안 된다. 젊으니 계속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원은 “할 줄 아는 게 펜싱밖에 없다.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이 열리는) 호주까지 뛰겠다”고 다짐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다음 달 1일 프랑스로 출국해 오를레앙 그랑프리 대회에 나선다. 그랑프리는 단체전 없이 개인전만 열린다. 원 코치는 “이번 시즌에는 선수들의 개인 랭킹을 많이 올리는 게 목표다. 좀 더 성장해서 더 자신 있게 경기에 뛰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천=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