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으로 돌아간 스칸디나비아… “써보니 집중력과 이해력 떨어진다” AI의 교육적 가치 검증된 적 없어… 개발 과정도, 교사 교육도 졸속 우려 ‘세계 최초’ AI 교과서 집착할 일 아냐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교육부가 29일 국가 수준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개발을 완료했다고 선포한다. 지난해 2월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언한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이후 검정 심사 기간을 포함해도 고작 15개월 만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교과서가 탄생한 것이다.
AI 교과서 개발 과정도 졸속이지만 이를 가르쳐야 할 교사 교육도 턱없이 부족하다. 내년 3월 개학 직전에야 6시간 연수를 받고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교사들은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학생의 디지털 중독을 걱정하고 있다. 문해력과 시력 저하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도 외면할 수 없다. 생성형 AI를 신뢰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교육부가 무차별적으로 추진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자칫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괜한 우려가 아니다.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유럽의 과학자들이 지난해 12월 유치원·초등학교의 디지털화 유예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디지털 기기 때문에 학생의 집중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화 교육을 시도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작년부터 디지털 기기를 포기하고 다시 종이 교과서와 손 글씨로 돌아가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맞춤형 교육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초중등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정답과 오답을 확인할 뿐인 생성형 AI에는 지식의 학습 과정에 대한 인과적 분석이나 학생의 성취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생성형 AI가 학생의 호기심을 강화해주고, 잠재력을 키워준다는 어떠한 실증적 근거도 아직까진 존재하지 않는다. AI 디지털 교과서로는 기술에 의존적인 학생을 길러낼 뿐 이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학생을 길러내긴 어렵다.
교육부는 당장 내년 3월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고 하지만 교육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국 교육감들은 교육학적 가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AI 디지털 교과서에 반발하고 있다. 126개 교육단체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밀어붙이는 이 장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시행령을 통해서 구독료와 기기 구입비 등의 예산 부담을 17개 시도교육청에 떠넘긴 것이 심각한 직권남용이라는 것이다. 입법조사처의 추정에 따르면 교육청이 부담해야 하는 예산은 연간 1조7343억 원에 이른다. 야당도 교사 연수 등의 교육부 예산을 전액 삭감하려 하고 있다.
졸속 도입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애써 개발한 AI 디지털 교과서를 종이 교과서와 함께 사용하겠다는 것이 현재 교육부의 어정쩡한 입장이다. 교육감의 요청에 따라 2026학년도 이후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일정을 조정하겠다고도 밝혔다. 문해력 논란이 집중된 국어 교과서는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야당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규정했다.
지식 교육은 전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에 맡기고, 교사는 창의·인성 교육만 담당하도록 한다는 당초 교육부 계획은 구호로만 남을 처지다. 자칫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다가 참혹하게 실패한 ‘디지털 교과서’의 전철을 따라가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세계 최초’라는 허상에 집착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