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비가 오지 않아 보리가 죽고, 가을 이른 서리에 벼가 망가졌네.
세밑인데 먹을거리가 없어, 밭에서 지황(地黃)을 캔다.
그걸 캐서 무엇에 쓰나. 들고 가서 마른 양식과 맞바꾸지.
이른 새벽 호미 메고 나섰지만, 어스름한 저녁에도 광주리가 차질 않네.
붉은 대문 부잣집에 들고 가, 얼굴 희멀끔한 도령에게 판다.
“댁의 살찐 말에게 먹이시면, 털의 윤기에 땅마저 번쩍번쩍할 겁니다.
말 먹이고 남은 곡식과 바꾸어, 이 주리고 쓰린 창자를 채우고 싶어요.”
(麥死春不雨, 禾損秋早霜. 歲晏無口食, 田中采地黃. 采之將何用, 持以易餱糧. 凌晨荷鋤去, 薄暮不盈筐.
携來朱門家, 賣與白面郎. 與君啖肥馬, 可使照地光. 願易馬殘粟, 救此苦飢腸.)
―‘지황 캐는 사람(채지황자·采地黃者)’ 백거이(白居易·772∼846)
보리와 벼농사로 근근이 살아온 농민이 흉년을 만나자 한 해의 끝자락이 이토록 비참해졌다. 먹을거리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지황을 캐러 나선 농민. 원래 약재로 쓰는 뿌리식물이라 양식거리는 못 되지만 그래도 쓸모는 있었던 듯. 한겨울에 캐러 나선 것도 그렇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캐도 광주리가 차지 않는’ 것으로 보아 채취하기가 꽤 힘들었던 모양. 한데 이 고된 수고의 대가가 너무 빈약하다. 여북하면 ‘말 먹이고 남은 곡식’이나마 달라고 호소했을까.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