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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폭탄, 53년 전 닉슨 ‘보편관세’의 데자뷔[딥다이브]

입력 | 2024-11-30 10: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 시한폭탄’ 타이머를 작동시켰습니다. 이미 ‘캐나다·멕시코에 25%, 중국엔 추가 10%’ 관세 예고장 날렸고요. 선거 공약이었던 모든 수입품 10~20% ‘보편관세’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전 세계가 그의 SNS 글 한 토막에 벌벌 떨고 있는데요.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겠다며 보편관세라는 초강수를 뒀던 미국 대통령. 이전에 또 있었죠. 바로 1971년의 리처드 닉슨입니다. 닉슨의 팬으로 유명한 트럼프가 53년 전 닉슨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트럼프가 왜 관세에 집착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 닉슨의 보편관세를 들여다봅니다.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뉴시스  

*이 기사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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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강하게, 달러를 약하게
미국이 다시 제조업을 위대하게 만들고 수출을 늘려 무역적자에서 탈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건 뭘까요. 트럼프 당선인에 따르면 바로 ‘달러 약세’입니다. 왜냐고요? 강달러가 미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결정적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는 지난 6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큰 통화 문제가 있습니다. ‘강한 달러-약한 엔, 약한 위안’ 등 환율 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는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 그들과 싸웠는데 그들은 항상 통화 약세를 원했죠. 저는 더 이상 통화 약세를 유지하면 관세를 부과할 거라고 말하며 싸웠죠. 그것(강달러)은 다른 나라에 트랙터 등을 팔려고 하는 미국 기업들에 엄청난 부담입니다”

11월 26일 화요일, 텍사스주 이글패스에서 멕시코와 미국을 잇는 다리를 트럭들이 지나가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에 가장 많은 수출을 하는 나라다. AP 뉴시스

미국산이 안 팔리는 게 제품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불리한 환율 탓이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꽤 확고하게 자리 잡은 사고방식입니다. 그 시절 미국에선 무역흑자가 급감한 게 독일과 일본이 수출을 위해 통화가치를 일부러 낮게 유지한 탓이라고 봤죠.

급기야 미국의 연간 무역수지가 19세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1971년.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난국을 타개할 경기부양책을 닉슨 대통령에 보고합니다. 대책 중엔 그 유명한 금태환 정지(외국이 달러를 가져오면 미국이 금으로 바꿔 지급해 주던 걸 중단)와 함께 물가·임금 동결이 있었고요. 아울러 이게 포함됩니다. 모든 수입품에 일시적으로 10% 관세를 추가 부과할 것.

처음 이 안을 보고 받았을 때, 닉슨 대통령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 녹음테이프엔 이런 그의 발언이 남아있죠. “수입 관세는 다른 나라에 반격하고 양보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라 날 기쁘게 하네.”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 교수의 ‘40년 후의 닉슨 쇼크: 수입 할증료 재검토’ 논문 참고)



관세는 대중에 인기 있는 정책
모든 수입품에 일제히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보편관세’는 미국에서도 1930년 이후엔 한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1971년 8월 13일 금요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닉슨 대통령 주재의 비밀회의에 참석한 주요 경제 참모들은 이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입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관세 인상의 부작용을 지적했습니다. 관세 탓에 수입이 줄면 미국 달러화 가치가 되레 더 뛸 수 있다는 거였죠.

하지만 코널리 재무장관은 추가 관세가 다른 나라를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 거란 점을 강조했죠. “미국 국민에게 국경세 부과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세금이 환율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결국 참석자들은 상대국을 압박하는 협상카드로써 일시적인 추가 관세 안에 합의합니다.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역사에 ‘닉슨 쇼크’로 기록된 유명한 특별메시지를 발표합니다. 전 세계를 쇼크에 빠뜨린 핵심 내용은 금태환 정지였지만, 관세 인상도 있었습니다.

“저는 달러를 보호하고,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미국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일시적인 조치로 저는 오늘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10%의 추가 세금을 부과합니다. 이는 불공정한 환율로 인해 미국 제품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불공정한 대우가 종료되면 수입세도 종료될 것입니다.”

1971년 5월 경제 관료들과 회의 중인 닉슨 대통령. 왼쪽부터 아서 번스 연준 의장, 존 코널리 재무장관, 닉슨 대통령, 폴 맥크라켄 경제자문위원장, 조지 슐츠 백악관 예산관리 국장.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관세 정책은 역시나 대중에게 인기 있었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는 추가 관세에 찬성했죠. 반대는 14%뿐이고 15%는 잘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무역 상대국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미국 재무부가 각국에 환율 조정 요구 사항을 들이밀었습니다. 미국 달러화를 18% 평가 절하하고, 특히 일본 엔화는 24% 평가 절상하라는 요구였죠. 

한마디로 미국이 다른 나라에 이런 식으로 협박한 겁니다. ‘10% 관세 계속 얻어맞을래? 아니면 너희 통화가치 18% 이상 올릴래?’ 마치 조폭 같은 행태인데요. 당시는 지금과 달리 고정환율제로 정부가 공식 환율을 정하던 시절이었죠. 미국은 이런 협박이 쉽게 들어 먹힐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상대국의 저항이 거셌습니다. 특히 일본이 세게 버텼죠. 엄청난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달러 매입에 쏟아부으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한 달쯤 지나서도 협상에 별 진전이 없자 국가 안보 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가 나섭니다. 그는 이런 자극이 국제적 긴장을 높이고, 상대국 보복을 불러올 거라고 우려했는데요. 하지만 추가 관세를 철회하자는 키신저 제안을 닉슨 대통령은 거부했습니다. “어려워요, 헨리. (관세는) 국내에서 인기가 너무 높아서, 무언가를 얻기 전엔 끝낼 수 없어요. 국민이 이 관세를 지지하고 있어요. 맙소사, 그냥 포기할 순 없죠.”



닉슨의 승리? 미국 경제의 패배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고 협상을 이어갑니다. 마침내 1971년 12월 18일, 미국 워싱턴DC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10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합의를 이뤘죠. 금에 대한 미국 달러 가치는 7.9% 평가절하됐고(온스당 35달러→38달러), 일본 엔화는 달러화 대비 16.9%, 독일 마르크화는 13.5% 평가절상됩니다. ‘스미스소니언 협정’이죠.

한동안 버텼던 일본 정부도 ‘10% 추가 관세보다는 차라리 엔화 평가절상이 낫다’는 자국 기업들의 아우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 달러화 가치 하락은 이미 외환시장에선 반영돼 있던 수준이었고, 단지 이를 각국 정부가 공식화한다는 의미이긴 했지만요.

목표를 달성한 닉슨 대통령은 협정 체결 이틀 뒤인 1971년 12월 21일 10% 추가 관세를 폐지합니다. 보편관세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실험이 4개월 만에 막을 내린 거죠.

1972년 11월 대선 선거 유세 중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 그는 60.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여론은 어땠을까요. 당시 타임지 기사는 스미스소니언 협정으로 얻어낸 달러화 평가 절하를 “조용한 승리”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닉슨과 코널리에게 승리입니다. 평가절하를 감수한 그들의 용기는 대중과 양당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게 정말 미국 경제의 승리였을까요? 단기적으론 그런 것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엔화 절상 요구에 굴복했고, 미국은 그토록 소망하던 ‘싼 달러 시대’를 열었고, 닉슨 대통령은 이듬해 11월 압도적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펼쳐집니다. 달러화 평가절하는 고스란히 미국 내 수입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가격 통제 정책이 끝나고, 중동발 오일쇼크까지 닥치면서 1973년부터 미국 물가는 미친 듯이 급등합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이 펼쳐지죠.

또 잠시 흑자로 돌아서나 싶었던 미국의 무역수지는 1976년 다시 적자로 돌아서 지금껏 해마다 적자 행진을 이어갑니다. 이후에도 미국은 약달러 정책을 폈지만(예-1985년 플라자합의), 무역적자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1955년 이후 미국의 월간 무역수지 추이. 무역수지는 1971년 소폭 적자를 기록한 뒤 다시 플러스로 돌아선 듯했지만, 1976년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적자폭이 점점 더 불어나는 추세다. 트레이딩 이코노믹



왜 또다시 보편관세인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트럼프 정책을 볼까요. 그는 11월 26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내년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펜타닐과 불법 이민자의 침공이 멈출 때까지” 멕시코와 캐나다산 모든 제품에 25%,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죠. 미국의 1, 2, 3위 교역국을 한꺼번에 겨냥했는데요. 관세를 협상 무기화한 겁니다. ‘관세 맞을래, 요구사항 들어줄래’라는 협박이 53년 전 닉슨의 정책과 매우 유사한데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건 미국의 교역 상황입니다. 1971년 미국의 상품 수입은 GDP의 3.4%에 그쳤지만, 지난해엔 12.7%에 달합니다. 그만큼 미국 경제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관세 영향이 크단 뜻이죠. 자칫 미국 기업, 소비자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겁니다.

1989년 도널드 트럼프가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넬리 코널리(존 코널리의 부인) 추모 행사에서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악수하는 사진. 성공한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1980년대부터 30년 넘는 나이차이가 나는 닉슨과 교류했다. 닉슨 대통령 박물관은 2020년에 트럼프가 젊은 시절 닉슨에게 보낸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사진도 당시 전시회에 공개됐다. 

게다가 주요 교역 상대국이 협박한다고 호락호락 말 들을 것 같지도 않죠. 중국은 이미 2018년 트럼프 1기가 관세를 올렸을 때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서 관세를 무력화한 적 있습니다. 위안화가 지금보다 더 약해지는 것(즉, 미국 달러가 상대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은 트럼프의 희망 사항과 정반대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걸 다 알고도 트럼프는 관세라는 무기를 쉽게 놓진 않을 겁니다. 이미 ‘보편관세’를 선거공약으로 외쳐 당선됐으니, 앞으로 다른 나라로 더 범위를 넓혀갈지도 모르죠. 그 나라를 협상장에 앉히기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그리고 관세는 정치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미국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구한다’는 목표야 같지만, 대중에겐 바이든식 당근(보조금)보단 트럼프식 채찍(관세)이 더 소구하는 법입니다. 50여 년 전 닉슨 전 대통령 사례가 이를 입증해주죠. 참고로 트럼프는 1980년대부터 닉슨과 깊은 친분을 나눈 닉슨 팬이기도 합니다(둘의 성향이 많이 닮았죠).

최근 여론조사도 이를 확인해 줍니다. 11월 중순 C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52%는 긍정적이라고 답했고요. 특히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는 83%가 이를 선호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뭐라 하든(UBS ‘보편관세 10% 부과하면 물가 1.7% 상승’ 전망), 실제 무얼 얻어낼 수 있든, 관세는 정치적으로 좋은 무기입니다. 폴 크루그먼의 말대로 나쁜 경제 아이디어는 죽기를 거부하나 봅니다. 관세의 무기화라는 좀비 아이디어가 다시 활개 칩니다. By.딥다이브

아직 취임이 50일 정도 남았지만 전 세계 경제계가 온통 트럼프 이야기만 하는 듯합니다. 관세 폭탄은 과연 터질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든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보편관세. 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경제에서 유일하게 부과한 사례가 있습니다.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입니다. 

-당시 미국은 무역적자의 원인이 강달러에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10% 보편관세를 부과한 뒤, 교역 상대국에 달러 평가절하를 요구했죠. 4개월의 협상 끝에 마침내 스미스소니언 협정으로 목표를 달성합니다. 

-‘관세의 무기화’는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정작 달러 평가절하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를 겪었죠. 이제 다시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를 협상 무기로 꺼내들었습니다. 왜 나쁜 경제정책은 죽지 않고 살아날까요. 

*이 기사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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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