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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시대 연 전길남 박사 이야기[곽재식의 안드로메다 서점]

입력 | 2024-11-30 01:40:00

1982년 5월 첫 메시지 전송 실험
IT산업 발전 초창기 성공담 담아
◇전길남, 연결의 탄생/구본권 지음/392쪽·1만8800원·김영사




나는 정말로 산신령이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컴퓨터로 무슨 일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산신령에게라도 빌어 보고 싶다면 관악산을 향해 빌어 보라고 추천하곤 한다. 서울 관악산은 미국 외 국가에서 처음 인터넷 통신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82년 5월, 흔히 TCP/IP라고 부르는 방식과 같은 계통의 방식으로 컴퓨터 간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실험이 한국에서 처음 이뤄진 곳이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 건물이다.

TCP/IP 통신 방식은 지금도 인터넷 연결에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원래 이 방식은 미국의 연구 기관들이 서로 통신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은 세계를 통신으로 연결하는 도구다. 그렇다면 두 군데 이상의 나라에서 이 방식이 사용된 첫 시점인 1982년 5월의 그날은 인터넷이 우리가 아는 인터넷이 된 순간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관악산은 인터넷의 산신령이 살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 아닐까? 그 첫 번째 실험에서 서울대는 당시 경북 구미에 있던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와 통신했다고 한다. 그러니 경북 구미는 조금 과장하자면 인터넷의 초창기 발상지 중 하나로 당당하게 언급해 볼 만한 도시다.

‘전길남, 연결의 탄생’은 바로 이 실험을 이끌었던 전길남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전 박사는 학술적으로도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을 정도로 공적을 인정받는 학자다. 그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한국 인터넷 산업 초창기에 큰 역할을 한 사람도 많아서 자주 언급된다.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해 잘 정리한 책이 나온 것은 뜻깊은 일이다. 내용도 상당히 충실하다. 일본에서 태어난 전 박사가 어떻게 미국에서 공부했고 또 어떤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했는지 개인사와 인간적인 면모도 잘 서술돼 있다. 정보기술(IT) 산업과 한국 인터넷 문화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한국 기술의 성장 과정에 대한 관심이 이상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한국이 과학기술을 급격히 발전시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했는지에 관한 사연은 많이 기록돼 있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어떤 말을 했고,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성공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한국 IT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지금 같은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이 같은 책이 많이 나와서 한국의 발전 과정과 미래에 대해 깊이 토론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책은 아무래도 훌륭한 인물의 삶을 기념하며 쓴 책이라 좋은 이야기, 감동적인 사연 위주로 내용이 구성됐다. 앞으로 나올 한국 기술 산업을 돌아보는 책에서는 갖가지 실수한 이야기, 과학기술 발전을 방해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반성할 점이 있었다는 등 다양한 사연까지 다루면 더욱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책은 얼마나 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며, 또 얼마나 더 재미있겠는가?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