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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17세기 명나라 무너뜨린 ‘기후의 위력’

입력 | 2024-11-30 01:40:00

명의 몰락 원인 기존 통설 반박
기후위기 속 사회적 재앙 재구성
◇몰락의 대가/티모시 브룩 지음·박찬근 옮김/336쪽·2만6500원·너머북스




1642년은 중국 명나라 역사상 최악의 해였다. 전례 없이 심각한 한파와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떼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사지로 내몰렸다. 산 사람은 왕겨나 썩은 음식물을 찾아 헤맸다. 몇 두의 왕겨나 나무껍질을 얻을 수만 있어도 기쁜 일이었다. 이로부터 2년 뒤 명 제국은 무너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중국사 교수인 저자는 신간에서 명 제국을 몰락시킨 극단적인 곡물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기후’라고 단언한다. 명나라 말기 은의 유입과 화폐 공급량으로 인해 인플레가 촉발됐다는 기존 통설을 반박한 것. 그는 수백 개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한 후 그 시점이 소빙하기 시기와 일치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자연 현상이 명 제국의 명운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명, 청, 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3000권에 달하는 지방지와 수필, 일기, 회고록, 영국 동인도회사 장부 등을 모았다. 777건에 달하는 기근 시기 곡물 가격 자료를 추출해 쌀, 보리, 밀, 콩 등 곡물 종류별로 가격 추이를 추적했다. 물가를 기후 변화의 결과로만 해석하지 않고 명대의 물가를 기후 변화를 감지하는 대리 지표로 활용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기후 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과정,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곡물 가격으로 고통받은 서민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특히 명대 서민 가정이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자녀 양육을 위해 필요로 한 연간 생활비를 추정한 대목이 흥미롭다. 노동자, 군인, 자영업자, 장인, 어부 등 서민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선 은 14냥이 필요했다. 이에 비해 중산층은 23냥이 들었다. 서민층의 연간 임금은 은 5∼12냥, 중산층은 14∼22냥이었다. 부족분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해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은 1푼, 1돈, 1냥으로 각각 살 수 있는 25가지 물건도 제시했다. 명대 대부분의 시기에 쌀 1두의 정상 가격은 은 3∼4푼이었지만, 소빙하기에 따른 기근 때는 은 10∼30푼으로 뛰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인플레이션의 고통이 엄습한 현 시점과 당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추천사에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 준다”고 썼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