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헬스케어 시대 동아일보-고려대 의료원 공동 기획 웨어러블 기기 진단 등에 활용… 제도 정비해야 본격 홈케어 가능 ‘방문 의사’제도 정착 방안도 필요
국내 홈 헬스케어는 아직 시작 단계로 평가된다. 홈 헬스케어를 활성화하려면 법적, 제도적 정비와 함께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홈 헬스케어가 본격화했을 때 가상의 모습. 고려대 의료원 제공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런 방식의 홈 헬스케어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력은 이미 어느 정도 갖췄다는 뜻이다. 홈 헬스케어의 현주소를 점검한다.
● 진단에 도움 주는 웨어러블 기기
의료진은 부정맥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심전도 검사에서는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증세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환자가 병원에 도착할 무렵 그 증세가 사라질 때가 더러 있다. A 씨가 그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의료진은 심전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시계형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도록 했다.
이틀 후 A 씨에게 가슴 두근거림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A 씨는 즉시 고려대 안암병원으로 갔다. 의료진은 웨어러블 기기에 저장된 데이터를 분석했고, 그 결과 심실빈맥을 발견했다. 심실빈맥은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어 신속하게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다.
50대 여성 B 씨도 A 씨와 상황이 비슷했다. 가슴 두근거림 때문에 응급실을 몇 번이나 찾아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혹시나 해서 정신건강의학과 검사도 받았다. 그러던 중 패치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했고, 심방세동을 발견했다.
당뇨병 환자들도 이런 웨어러블 기기를 쓴다. 기기에 꽂힌 바늘이 혈당을 일정한 간격으로 체크해서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식후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혈당이 잘 조절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 보완해야 할 과제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자들이 이런 기기를 이용해 건강을 관리하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의료비용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웨어러블 기기 시장은 커지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면 데이터가 곧바로 수집돼 의료기관에까지 전송도 가능하다. 원격으로 전달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살필 수 있고, 처방도 내릴 수 있다. 특히 식이요법이 필요한 당뇨병 환자의 경우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혈당 관리가 수월해진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박홍석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의사가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방하는 것을 의료 서비스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 서비스로 본다면 신의료기술로 채택한 뒤 적정한 서비스 가격(의료수가)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직 국내 홈 헬스케어는 초보적 단계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더해진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 단골 의원이 헬스케어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실시간 원격의료가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아직은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처방은 없을까. 김 교수는 “동네 단골 의원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헬스케어를 받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병을 키워 대형 병원을 찾을 게 아니라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건강 상태를 수시로 살피자는 것. 일단 만성질환자라면 동네 의원을 홈 헬스케어의 ‘본부’처럼 사용하란 뜻이다.
김 교수는 또 단골 의사와 언제든지 전화로 상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의 전화 상담은 의료행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단순 상담으로 여기는 것. 김 교수는 “5∼10분 동안 의사가 전화 통화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에 맞는 대가가 책정돼야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령자 재택의료 시스템 갖춰야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하지만 이때도 법적 문제가 생긴다. 의료법상 의료행위는 병원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예외 규정들이 있긴 하지만 1차 의원이 아닌 대학병원 의사의 경우 방문 진료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방문 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100∼200명의 의사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박 교수는 “그 의사들은 대부분 휴일도 없이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방문 진료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 C 씨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C 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환자에 대한 상황을 파악하고 하루 동선을 짠다. 환자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다. C 씨는 휴대용 엑스레이, 초음파 기기, 컴퓨터 등을 들고 다닌다. 현장에서 혈액도 채취하고 검사도 시행한다.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데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일반 의원 진료 시간보다 상당히 길다.
박 교수는 “일단 방문해 보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약효가 듣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 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약 관리만 잘해줘도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병원에 와야 안심이 되는 시대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병원 밖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진짜 홈 헬스케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