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후 자주포 대량 수출… 내부적으로 포병 대대적 현대화 가능성
북한의 M1989 ‘주체’ 170㎜ 자행형 곡사포. [동아DB]
당초 사라토프에 북한제 자주포가 반입됐다는 소식을 접한 서방의 공개출처정보(OSINT) 소식통들은 최근 북한이 공개한 신형 자주포 ‘주체107년형’의 수출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지난 3년 동안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대량의 야포를 잃은 러시아는 장거리 포병 무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러시아가 형편없는 성능의 170㎜ 곡사포를 가져다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야포 부족한 러시아, 北 노후 무기까지 인수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이 자체 개발한 장거리 자주포 일명 ‘주체포’가 러시아 한 도시에서 포착됐다”고 11월 14일 보도했다. 사진은 RFA가 인용한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매체 ‘Status-6’ X(옛 트위터) 계정에 게시된 북한 주체포로 추정되는 무기. [Status-6 X(옛 트위터) 계정 캡처]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북한이 유사시 서울 포격용으로 배치한 주체포를, 심지어 보유 물량 대부분을 빼내 러시아에 넘겨준 배경이다. M1989는 1994년 북한이 한국에 ‘서울 불바다’ 위협을 했을 당시 수도권을 집중 포격할 수 있는 장사정포로 큰 우려를 샀다. 이 자주포는 180여 문이 생산돼 경기 파주 군사분계선 이북에 배치돼 있었다. 이 중 상당수를 러시아에 넘겨줬다는 것은 북한군 전방 포병 전력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다시 말해 주체포가 북한군에서 퇴역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의 170㎜ 장사정포는 197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다. 당시 김일성은 서울을 포격할 수 있는 재래식 포병 무기를 손에 넣길 원했다. 이를 위해선 당시 소련과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의 주력 야포인 152㎜ 곡사포의 2배 이상 사거리를 구현해야 했다. 북한은 소련이 해안포로 개발했지만 채택하지 않은 S-18 170㎜ 해안포를 들여와 포신 2개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긴 사거리를 구현했다. 그리고 이 주포를 중국제 59식 전차 차체에 붙여 M1978 ‘곡산’을 제식화했다. 곡산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양국 군이 모두 사용했는데 실전에서 형편없는 성능이 드러났다. 이란과 이라크는 50㎞ 이상 사거리를 지닌 곡산으로 상대편 유전지대에 포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명중률이 충격적일 정도로 낮은 데다 위력도 부족해 유의미한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한국 정보기관이 현지 공작으로 곡산 1문을 몰래 들여왔는데 실전에서 도저히 쓰지 못할 성능과 신뢰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포병장교였던 필자도 국내 모처에서 보관 중인 곡산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고 그 조악함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M1989 주체는 곡산에 사용된 주포를 승리호 장갑차에 얹어 소폭 개량한 모델이다. 개량형이라고는 하지만 곡산처럼 낮은 성능과 신뢰성을 가진 화포로 평가된다. 이 자주포는 방열부터 사격까지 모든 과정이 수동인 탓에 정차 후 포탄 발사 준비에 30분이 걸린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갱도 진지에서도 사격에 5분 넘게 소요된다. 최대한 긴 사거리를 구현하려고 높은 위력의 추진 장약을 쓰는데 이 때문에 포신과 약실에 무리가 간다. 연속으로 사격할 경우 포탄이 약실이나 포신 내에서 폭발할 위험마저 있다.
주체포 사거리는 54㎞ 이상으로 한국군 K9 자주포보다 길기는 하다. 그러나 사거리가 길어도 표적에 맞지 않는다면 포병 무기로서 가치가 없다. 같은 주포를 사용하는 곡산의 경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원형공산오차가 심할 때는 ㎞ 단위로 나왔다. 10발을 쏘면 그중 5발이 떨어지는 탄착군 직경이 ㎞ 단위에 달한다는 것이다. 핵탄두라도 실려 있다면 이 정도 오차는 충분히 상쇄되지만 주체포 포탄은 약 20㎏으로 한국군 155㎜ 고폭탄의 절반에 불과하다. 작약량도 2㎏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포탄 1발 위력이 105㎜ 고폭탄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이런 자주포를 들여온 이유는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가 집계한 러시아군 야포 손실은 2만 문을 훌쩍 넘겼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서방제 자주포에 맞설 긴 사거리의 포병 전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구원 투수로 투입된 옛 소련 시절 2S7 203㎜ 자주포마저 대부분 소진되면서 최근 러시아군은 일방적으로 포격을 얻어맞고 있다.
사실 북한은 명중률과 위력이 떨어지는 주체포를 진작 교체하고 싶었을 테지만 경제난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다. 북한은 러시아에 대량의 무기와 탄약, 심지어 병력까지 공급하고 반대급부로 많은 돈과 물자, 기술을 얻어가고 있다. 북한이 최전선에 배치된 장사정포를 대거 빼내 러시아로 보냈다는 것은 이미 이 무기가 북한군 일선 장비 목록에서 삭제돼 퇴역했을 개연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북한은 이번 주체포 수출 조치가 있기 전에 전연군단의 포병 전력을 대대적으로 현대화했다.
우선 주체포와 함께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 전력의 한 축인 240㎜ 방사포가 현대화되고 있다. 북한의 240㎜ 방사포는 M1985, M1989, M1991 등 세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M1991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은 모두 퇴역했다. 22연장 발사관을 가진 M1991은 430여 문이 생산됐고 이 가운데 200여 문이 전연 지역에 배치돼 있다. 북한은 2026년까지 기존 M1991을 ‘갱신형 240㎜ 방사포’로 현대화한다고 10월 9일 발표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국의 투자로 건설된 평화자동차공장에서 생산되는 이 갱신형 방사포는 최대사거리 67㎞인 240㎜ 유도로켓을 22발 연속 발사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사거리가 110㎞인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화성-11라 250문도 배치됐다. ‘북한판 KTSSM(한국형 전술지대지유도무기)’으로 불리는 이 무기는 발사차량 대당 미사일 4발이 탑재된다. 북한은 8월 화성-11라 전력화 행사를 갖고 전연 지역에 배치됐음을 선언했다. 이 무기들은 한국군의 대포병 사격을 피해 산(山) 후사면(後斜面) 갱도 진지에 배치됐다. 유사시 한국군 포병 사거리 밖에서 수도권을 향해 단 몇 분 만에 미사일 1000여 발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한국군 KTSSM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발당 기존 주체포 포탄의 100배가 넘는 위력의 탄두가 수도권 상공에 소나기처럼 쏟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 노리는 北 대구경 로켓탄·미사일
이 밖에도 북한은 지난해 12월 사거리 400㎞인 초대형 방사포 30여 문 도입을 시작으로 사거리 450㎞인 화성-11라 전술탄도미사일 등 로켓·미사일 전력을 대폭 강화했다. 1994년 서울 불바다 위협의 실체는 170㎜ 포탄 360여 발과 240㎜ 로켓탄 4400여 발이 일제히 날아오는 정도였다. 오늘날 ‘서울 불바다 2.0 버전’은 유사시 무수히 많은 대구경 로켓탄과 1000~2000여 발의 탄도미사일이 쏟아지는 위협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필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아이언돔 같은 요격 시스템을 하루빨리 대량 전력화해야 한다고 한국군에 권고했다. 군도 아이언돔 도입을 검토했지만 최초 도입 시도는 육군과 공군의 예산 다툼 때문에 좌절됐다. 두 번째 도입 시도 때는 국산화 만능론자들의 요구로 좌절됐다. 당시 방위사업청과 군 관계자들은 “아이언돔은 저속·단거리 로켓의 산발적인 공격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라서 장거리 로켓이 대량으로 날아오는 한반도 작전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형 아이언돔’ 개발을 밀어붙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게 필자 견해다.
현재 장사정포요격체계(LAMD)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인 한국형 아이언돔은 해궁 함대공미사일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아이언돔에 사용되는 1발에 1억 원인 타미르(Tamir) 요격 미사일은 사거리 70㎞, 요격 고도 10㎞에 달하고 다목표 동시 교전 능력도 갖췄다. 1발 가격이 6억 원인 LAMD-1형 미사일은 사거리 7㎞·요격 고도 5㎞이고, 1발 17억 원인 LADM-2형 미사일은 20㎞ 미만 사거리와 5㎞의 요격 고도를 지녔다. 요격 미사일이 워낙 비싸 대량 도입이 어려운 데다, 사거리가 짧아 북한 로켓탄을 요격하더라도 파편이 서울 북부나 경기 고양·파주·양주·의정부 등 지역 민간인 거주지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각국의 방공작전 개념을 살펴보면 군종 구분 없는 통합 방공이 대세다. 저고도로 들어오는 드론이나 순항미사일부터 고고도로 들어오는 탄도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육해공군이 통합 대응하는 방공작전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군내 헤게모니를 쥔 육군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LAMD를 육군 몫으로 따로 떼어냈다. 그러고는 유사시 북한 방사포·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하기 어려운 무기체계 사업에 3조 원 가까운 혈세를 퍼붓고 있다. 북한은 서울 불바다 2.0 준비를 거의 마무리한 상황이다. LAMD 대신 제대로 된 통합 방공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TV로 목격한 가자지구 폐허가 미래 서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7호에 실렸습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