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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패키지여행이 만족도 더 높아… ‘돈의 플라세보 효과’

입력 | 2024-12-01 09:04:00

[돈의 심리] 美 스탠퍼드대, 가격에 따른 에너지음료 플라세보 효과 분석




오래전 해외여행 관광 가이드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해외 패키지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에서 서로 다른 한국 팀을 만나게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은 “그 팀은 어디 어디를 갔느냐” “무얼 먹느냐” “어떤 숙소에 묵느냐” 등을 물어본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패키지 비용까지 묻는다. 이때 방문지, 숙소 등은 같은데 패키지 가격이 다르면 문제가 발생한다. 본인 패키지 가격이 싸면 의기양양해하고, 비싸면 속상해한다. 싸게 여행을 하면 훈장이 되는데, 비싸게 여행하면 뭔가 실수한 것 같고 바가지를 쓴 것 같다. “딴 팀은 얼마에 왔는데 우리는 왜 더 비싸냐”고 따지면 관광 가이드는 할 말이 없다. 다른 팀들에 거기는 얼마에 왔느냐고 물어보지 말라는 가이드의 푸념이었다.

싸게 사야 현명한 소비자?

돈에도 플라세보 효과가 있어서 같은 상품이라도 비싸게 구입하면 만족도가 더 높다. [GettyImages]

소비자는 패키지 관광뿐 아니라, 다른 상품도 사람들이 얼마에 샀느냐에 민감하다. 서로 다른 상품이면 괜찮다. 하지만 자기와 같은 옷이나 가방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사람이 그 옷이나 가방을 얼마에 샀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자기가 더 싸게 샀으면 잘한 것 같고, 자기가 더 비싸게 샀으면 속상해한다. 먹거리도 비싸게 산 사람은 바가지를 쓴 것이고, 싸게 산 사람은 현명한 소비자다.

그렇다면 같은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가격에 상관없이 같은 효용을 얻을까. 가격과 상관없이 같은 상품이 항상 같은 효과를 준다면 높은 가격에 산 사람은 그냥 호구가 되는 셈이다. 싸게 산 사람은 분명 현명한 소비자다. 하지만 같은 상품이라도 비싸게 산 사람이 좀 더 큰 효용을 느낀다면 비싸게 샀다고 문제가 될 건 없지 않나. 그럼 같은 상품을 비싸게 샀을 때 효과가 더 좋을까. 상품이 똑같은데 구입 가격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그렇지 않다. 비싼 가격에 사면 효과가 더 좋다. 소비자는 자기가 지불한 만큼 효과를 본다.

의약품에는 플라세보 효과라는 게 있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약일지라도 그것을 복용한 것만으로 실제 몸이 나아지는 효과다. 약을 먹었으니 이제 몸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정말로 몸을 낫게 한다. 그래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단순히 약을 먹었더니 몸이 좋아졌다는 것만으로 약의 효과를 판단하지 않는다. 가짜 약과 진짜 약을 구분해 먹이고, 진짜 약이 가짜 약보다 분명히 더 나은 효과를 보일 때 약의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다. 가짜 약만 먹어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 가짜 약보다 더 나은 효과를 보일 때 진짜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플라세보 효과는 의약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상품에도 있다. 같은 상품이라고 해도 비싼 가격에 구입했을 때 효과가 더 좋다. 돈의 플라세보 효과다.

바바 시브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팀이 2005년 발표한 실험을 보자. 연구팀은 일주일에 최소 3번 정기적으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에너지음료의 효과를 살펴봤다. 한 팀에게는 새로 나온 에너지음료의 성분을 보여주고, 가격이 2.89달러(약 4000원)라고 알려줬다. 현재 물가로는 1만 원 정도다. 그리고 다른 팀에게는 같은 에너지음료를 보여주면서 값이 2.89달러인데 대량 구매로 할인을 받아 0.89달러(약 1200원)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이 음료를 마시고 강하게 운동한 후 그들이 느끼는 피로도를 조사했다. 피로도는 1~7까지 강도에 따라 응답하게 했는데, 할인된 음료를 마신 팀의 피로도 평균은 4.5였다. 그리고 제값에 음료를 마신 팀의 피로도 평균은 3.7이었다. 이것은 모두 플라세보 효과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음료를 마셨으니 플라세보 효과의 결과도 비슷해야 했다. 하지만 음료 가격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왔다. 2.89달러 음료를 마신 사람들의 피로도 정도가 0.89달러 음료를 마신 사람들보다 낮았다. 같은 음료지만 더 비싸게 마셨을 때 피로도가 더 많이 감소한 것이다.

비싼 에너지음료 각성 효과↑

이렇게 비싼 가격의 음료를 마셨을 때 효과가 더 좋게 나온 건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일까, 아니면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 연구팀은 실질적으로도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피실험자들에게 정신 각성 효과가 있는 음료를 제공했는데, 한 팀에게는 그 각성 음료의 가격이 1.89달러(약 2600원)라고 했다. 또 다른 팀에게는 가격은 1.89달러지만, 할인을 받아 0.89달러(약 1200원)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음료를 마신 후 피실험자들은 30분 동안 퀴즈를 풀었다.

이 미션에서 0.89달러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평균 6.8개, 1.89달러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평균 9.7개의 퀴즈를 풀었다. 이 연구는 피실험자 125명을 무작위로 나눠서 진행했다. 그런데 비싼 음료를 마신 사람들이 평균 약 3개의 퀴즈를 더 풀었다. 비싼 음료를 마신 사람들이 더 좋은 효과를 느낀다는 건 단순히 기분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퀴즈를 더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비싼 음료를 마시면 단지 기분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정신이 각성되는 효과가 있었다.

또 다른 연구를 살펴보자. 2008년 레베카 웨이버 미국 MIT 교수 연구진은 가격에 따라 진통제 효과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 82명을 실험 대상으로 모집했다. 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에게는 한 알에 정가 2.5달러(약 3500원)짜리 진통제를 줬고, 다른 한 팀에게는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했다며 한 알에 0.1달러(약 140원)짜리 진통제를 줬다. 하지만 이 진통제는 진짜 약이 아니라 둘 다 가짜였다. 약 가격에 따라 플라세보 효과에 차이가 나는지를 알아보려 한 것이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전기 쇼크를 가했다. 이때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진통제를 먹으면 전기 쇼크로 인한 통증이 줄어드는지를 조사했다. 2.5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 가운데 85.4%가 통증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0.1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들은 61%가 통증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진통제는 모두 가짜였기 때문에 통증이 줄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플라세보 효과였다. 보통의 의약품 연구 실험처럼 여기에서도 굉장히 강한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났다. 과반의 사람이 가짜 약을 먹고 진통 효과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진통제 가격에 따라 진통 효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0.1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들과 비교해 2.5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들의 진통 효과가 20% 이상 높았다. 좀 더 강한 전기 쇼크를 준 경우는 따로 구분해서 조사했다. 강한 전기 쇼크를 받아 통증이 더 컸을 때 2.5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 중 80.5%가 통증이 줄었다고 했고, 0.1달러짜리 약을 먹은 사람들은 56.1%가 통증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같은 약이라도 비싼 가격의 약을 먹은 사람들은 진통 효과가 큰 반면, 싼 가격의 약을 먹은 사람들은 진통 효과가 작았다.

같은 패키지여행 가격에 따라 만족도 달라

이 효과를 패키지여행에 적용해보자. 같은 호텔에 묵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관광지를 간다. 그런데 두 팀의 패키지 가격이 다르다. 그러면 비싼 가격을 주고 간 사람은 그냥 바가지를 쓴 걸까. 돈의 플라세보 효과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싼 가격을 준 사람은 같은 호텔에 묵더라도 그 호텔이 좋고 편안하다고 느낀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더 맛있다고 느끼고, 같은 관광지를 가더라도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패키지 상품에 100만 원을 지불한 사람은 100만 원어치 만족도를 느끼고, 150만 원을 지불한 사람은 그만큼의 만족도를 느낀다. 같은 가방이라도 100만 원을 주고 산 사람은 100만 원의 효과를 보고, 200만 원을 주고 산 사람은 200만 원의 효과를 본다. 같은 상품이라도 그 상품에 얼마를 지불했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상품을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싼 가격에 구입했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 비싼 가격에 샀으면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 그게 돈의 플라세보 효과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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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7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