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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에 만나는 ‘햇와인’ 보졸레 누보[정기범의 본 아페티]

입력 | 2024-12-01 23:00:00


11월 21일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햇와인) 행사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열렸다. 매년 9월에 수확한 가메(Gamay) 품종의 포도를 4∼6주 짧은 숙성을 거쳐 내놓기 때문에 이 와인은 깊은 맛보다는 풍부한 과일 향과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 초보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보통 보졸레 와인은 6개월 이상 숙성시킨 후 병입하는 데 비해 보졸레 누보는 탄산침용방식(이산화탄소로 채워 밀봉한 탱크에 수확한 포도를 넣고 발효·추출하는 방식)으로 2, 3개월 만에 숙성을 끝낸다. 탱크 내에서 포도가 발효될 때까지 이산화탄소를 꾸준하게 주입한다. 알코올 함유량도 13%를 넘지 않아야 하고 산도에 대한 기준도 5g으로 엄격하게 제한한다. 프랑스 정부의 원산지 통제 명칭(AOC) 규정에 맞춰 포도 재배부터 양조까지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졸레 누보를 만들기 위해 수확한 포도를 4, 5일 이내 침용을 거쳐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한다. 그 때문에 색상은 일반 와인에 비해 연하며 라즈베리, 산딸기, 체리같이 경쾌한 맛이 나고 부드러운 타닌과 약간의 스파이시함, 탄산도 느낄 수 있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밤 12시를 기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보졸레 누보 행사가 시작된다. 19세기부터 있어 왔다고 전해진다. 와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리옹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파리에서도 주문이 몰리면서 전후 어려웠던 보졸레 지역 농촌 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다. 보졸레 와인의 인기를 더한 것이 보졸레에서 파리까지의 배송 경쟁인데 손수레, 코끼리, 마차까지 동원되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에 소개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13km를 이색 복장으로 달리는 보졸레 마라톤이 해외 토픽에 소개되고 있다.

‘보졸레 누보는 1980년대 저급한 와인이다’, ‘장삿속이 과하다’는 비난을 받으며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보졸레 생산자들에게 자극이 되어 고급화에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입에 쓴 약이 좋은 약이 된 셈이다.

보졸레 누보의 출시 날짜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37년 보졸레가 처음 AOC로 지정되었을 때는 와인 맛의 안정을 위해 12월 15일로 정했다가 1951년 보졸레 와인 생산자 협회에서 11월 15일로 출시일을 바꾸었으며 현 출시일은 1985년 보졸레 지역의 유명 생산자인 조르주 뒤뵈프(Georges Duboeuf)가 제안하여 받아들여졌다. 보졸레 누보는 50곳 이상의 와인 생산지에서 생산된다. 리옹 지역 레스토랑들은 오크통째 받아 작은 유리병인 피처에 담아 서빙하기도 한다. 파리의 카페, 비스트로에서도 12월 말까지 즐길 수 있다.

조만간 파리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옛 파리 중앙 시장이 있던 샤틀레레알에 위치하며 돼지 족발과 훈제 가공햄 샤르퀴트리, 굴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 피에 드 코숑에 들러 질 제랑 도멘을 맛볼 것을 권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선호한다면 11구의 야드 카브(Yard Cave) 와인 바에 들러 유명 내추럴 와인 생산자인 시릴 알론소가 만든 ‘위 아 영(We Are Young)’을 즐길 것을 추천한다. 한국에서는 통영산 굴과 함께 즐길 것을 권한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