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은 지 오래되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산다. 몇 년 전 그 집을 고쳐 살기로 했다. 집수리 경험이 없어 생각보다 시간과 품을 많이 썼다. 고치고 치우며 겨우 살던 어느 날 짐 보관 창고 업체에서 문을 닫는다는 연락이 왔다. 사과의 의미로 이달 안에 창고를 다 빼면 일부 월세를 돌려준다고 했다. 창고비도 부담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모든 일정을 창고 정리로 맞췄다. 짐은 내가 직접 뺐다. 2주 내내 짐을 들고 5층 계단을 올랐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둘, 책은 무겁다. 이번에 세어 보니 나는 1000권 좀 넘는 책을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읽고 쓰며 정보를 생산하는 게 직업이니 당연히 책과 가까웠다. 내가 책을 아무리 사랑해도 책을 옮기는 건 다른 문제였다. 책 수십 권을 묶은 뭉치를 수십 개 옮기다 보니 책 뭉치는 돌덩이나 다름없었다. 이삿짐 업체에서 책 많은 집을 꺼린다는 말도 완전히 이해했다. 앞으로 나올 내 다음 책들은 무조건 가볍게 만들리라, 5층까지 책 뭉치를 올리며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이 이사 내내 자책했다. 형편 맞춰 간편하게 신축 집에 살면 되는데 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나. 오늘 드디어 창고를 다 비웠다. 텅 빈 창고 앞에 서서, 수많은 짐 상자를 올렸다 풀고 1000여 권의 책에 쌓인 먼지를 일일이 닦아주고 꽂아주며 뭔가 배웠음을 알았다.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를 가지려면 무슨 노력을 하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집수리와 이사 과정에서 내렸던 수많은 판단이 나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비효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난 2주 내내 계단을 오르내린 결과 의외의 효과가 생겼다. 다이어트다. 운동량이 많은지 새벽에 라면을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이사가 끝나도 살이 다시 붙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무실 이사가 남았다. 거기도 오래되어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꼭대기 층이다. 그곳은 또 내게 얼마나 큰 깨달음을 줄까.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