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순진한 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 담화 중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등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묻는 말에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이 선거를 잘 치르고 국정도 욕 안 먹고 부드럽게 하길 바라는 것을 국정농단이라 한다면 국어사전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어찌 됐든 제가 검찰 총장 할 때부터 없는 것도 만들어서 제 처를 많이 좀 악마화시킨 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때부터 귀를 의심했습니다.)
민주당은 김 여사에 대한 수사 대상으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디올백 수수 사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의 불법행위 사건 △인사개입 사건 △채 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지방선거 개입 △총선 개입 △대선 불법여론조사 등 부정선거 개입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관저 이전 의혹 △국가기밀정보 유출 등 13건을 꼽고 있습니다.
의혹의 가지 수와 종류만으로도 대통령이 지금 자기 아내를 “순진한 면이 있다”고 감쌀 때는 아닌 듯합니다. 대부분의 순진한 사람들은 저런 의혹에 잘 안 휘말립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5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나란히 기념 촬영을 한 모습. 동아일보 DB
● “혜경아 사랑한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혜경 씨가 11월 1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수원지법은 이날 김 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뉴스1
이 대표는 그런 아내의 재판을 몇 시간 앞두고 페이스북에 ‘법정으로 향하는 아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죠.
“아무리 그래도 여자인데 금가락지 하나 챙겨 끼지 못하고, 아이들 키우고 살림 하느라 그 곱던 얼굴도 많이 상하고, 피아노 건반 누르던 예쁘고 부드럽던 손가락도 주름이 졌지만, 평생 남의 것 부당한 것을 노리거나 기대지 않았다.”
“동네 건달도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는 속설을 믿은 나의 상식과 달리 아내와 아이들이 공격표적에 추가됐다. 반복적이고 집요한 장기간 먼지털이 끝에 아이들은 다행히 마수에서 벗어 났지만 아내는 희생제물이 되었다.”
“아직도 나를 자기야라고 부르며 자신보다 남편과 아이들을 더 챙기는 혜경아. 미안하다.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 언젠가, 젊은 시절 가난하고 무심해서 못 해 준 반지 꼭 해줄게.”
하지만 법원은 150만 원 벌금형을 내리면서 “(김 씨가) 선거에 도움이 되는 자들에게 기부행위를 해 선거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액수를 떠나 행위 자체의 의도가 불법이라는 겁니다. 사전에 알았든 몰랐든, 밥값이 얼마이건 간에 김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 경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부인들에게 밥을 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논란을 일으킨 데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었겠죠.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대위 차원에서 공개한 이재명 후보 부부의 크리스마스 영상메시지 촬영 모습. 이재명 대표와 김혜경 씨가 크리스마스이브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재명C와 혜경C가 부른 코로나19 극복 응원 영상’ 제작보고회에서 산타와 루돌프 복장을 한 채 손을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러니 여권에서도 “연애를 정치에 이용하는 비겁한 행위”(국민의힘 조정훈 의원) “그분들 하는 행태를 보면 ‘놀고들 있네’라는 생각이 든다”(국민의힘 이상민 전 의원)는 등의 반응이 나온 겁니다.
● “그래서 아내가 쓴 글이 맞냐고요”
한 대표도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한 달째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11월 5일 한 유튜버가 “한 대표와 아내 등 일가 7명의 이름으로 윤 대통령 내외를 비난한 글이 당원 게시판에 다수 올라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사건이죠. 한 대표는 보름만인 21일에야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 “위법 등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제가 건건이 설명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한동훈’으로 작성된 글은 자신이 아닌 동명이인이 쓴 것이라면서도, 그럼 가족이 쓴 것은 맞느냐는 질문에는 애매모호하게 답하며 요리조리 피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쓴 글이 아니다”라고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당원 보호를 위한) 당의 의무가 있다”고 엉뚱한 답을 계속하니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럼 안 쓴 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논란이 계속되자 국민의힘은 한 대표와 가족 이름으로 올라온 글 1068건을 모두 조사했더니, ‘한동훈’ 이름으로 올라온 게 161건, 한 대표 가족 이름으로 올라온 게 907건이었다고 24일 밝혔습니다. 이 중 “‘한동훈’ 이름으로 작성된 글 12건만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고, 한 대표의 아내와 딸, 모친, 장인 장모와 같은 이름으로 올라온 글 907건은 ‘단순 정치적 견해 표명’(463건) 언론사 사설 및 기사(250건) 격려성 글(194건)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죄가 되느냐’부터 따지는 다분히 ‘검사’스러운 시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속 궁금해하고 물어보는 건 ‘죄가 성립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썼느냐’거든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1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우주항공산업발전포럼 주최 국회정책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는 이날 ‘당원게시판’ 의혹을 처음 제기한 유튜버를 형사고발한다고 밝혔다. 뉴스1
당원 ‘한동훈’이 한 대표가 아니라는 점만 강조하고, 당원 ‘진은정’이 한 대표 아내 진은정이 맞느냐에 대한 대답은 또 안 한 겁니다. 그러니까 친윤계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즉각 “한 대표 가족이 글을 썼다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허위 사실로 고발을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거죠.
선거철마다 여야 양쪽에서 영입 제안을 받아 온 한 기업인 출신 인사가 있습니다. 그는 “솔직히 내 욕심 같아선 정치에 도전도 해보고 싶은데 아내가 결사반대해서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랑꾼 정치인들께서도 저렇게 아내와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면 정치 욕심은 접었어야죠. 공직자나 공인이 되는 순간 가족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올가을 대한민국은 소비와 투자, 생산이 모두 후퇴하는 저성장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있고요. 그런데도 자기 가족만 지키려는 정치인만 득실대는 탓에 대한민국 정치판은 오늘도 되는 건 없고 시끄럽기만 합니다. 사랑꾼 남편 없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