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본인에게 편법으로 정치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후보자와 기부자 모두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흥수 전 인천 동구청장과 지지자 오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올해 10월 31일 확정했다.
오 씨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2017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인천에 있는 한 건물을 이 전 구청장의 선거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이 전 구청장의 명의를 도용해 계약했다. 그후 12회에 걸쳐 월세와 관리비 등으로 1400만 원가량을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도 오 씨의 임대료 지급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고 두 사람을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019년 기소했다.
2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결한 데에 주된 근거가 된 것은 ‘대향범’ 법리였다. 대향범이란 2인 이상의 행위자(기부자와 수수자)가 동일한 목표(불법 정치자금)를 실현하는 범죄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가 둘 다 있어야 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이 전 구청장의 ‘받는 행위’가 전제되지 않았으므로, 오 씨 또한 ‘주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대법원 또한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일방에 의해 정치자금이 마련은 됐으나 건네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으며, 오 씨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를 완료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정치자금범 위반 사건이 같은 판단을 받게 되는 건 아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이 대향범 법리에 따른 원심 판결을 수긍했을 뿐 명시적으로 법리를 밝힌 건 아니다”라며 “향후 유사 사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