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 사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제공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세기말의 불안을 담아 그린 걸작 ‘절규’(1893)에는 이 문장이 적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크기여서 뒤늦게 발견된 데다 내용도 특이해 누가 왜 적었는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비밀을 풀어낸 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연구팀. 적외선 카메라 촬영과 뭉크의 일기, 관련 기록을 대조해 본 끝에 연구팀은 뭉크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림을 공개한 뒤 ‘미치광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던 그가 연필로 조그맣게 글씨를 남겼다는 것이다.
● 뭉크 품은 초대형 미술관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가 함께 전시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2층 ‘뭉크의 방’ 모습. 사진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제공
흥미로운 것은 ‘뭉크의 방’을 둘러싸고 좌우로 연결되는 전시장의 구조다. 뭉크를 중심으로 미술관 왼쪽 공간은 19세기 이전 미술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요한 크리스티안 달의 작품부터 대표 컬렉터이자 기업인이었던 크리스티안 랑가르드(1849~1922)가 기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어 뭉크의 방을 지나면 20세기 이후 근현대 미술 컬렉션이 펼쳐진다.
이러한 구조는 유명작가인 뭉크를 매개로 노르웨이 문화를 소개하는 데 효과적이다. 미술관이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관하기 전 ‘절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듯, ‘절규’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자연스레 노르웨이 미술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이다. 잉그리드 로이네스달 국립미술관장은 “뭉크의 작품은 물론 노르웨이 여왕이 입었던 드레스, 노르웨이 디자인과 건축에 음악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우리 미술관”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의 컬렉터 크리스티앙 랑고르가 수집해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한 곳. 랑고르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고전 작품을 주로 수집했다. 사진 오슬로=김민
노르웨이 작가 얀 헤이베르그(Jean Heiberg)의 초상화와 가구가 함께 전시된 모습. 사진 오슬로=김민
이에 각 분야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들이 소통을 늘리고 창의적인 큐레이팅을 만들어 보자는 전략을 세웠다. 박물관과 미술관 역사가 짧고 특히 소장품 규모가 빈약한 한국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었다. 로이네스달 관장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섞여 새로운 소통을 함으로써 기존에 보지 못했던 전시가 꾸준히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은 개관 1년 반 만에 230만 명이 방문했다. 노르웨이 전체 인구가 600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