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기지원-軍참관단 ‘진퇴양난’ 트럼프 ‘매드맨 전략’에 부담 떠안고 北-美 직거래 ‘韓 패싱’ 직면할 수도 정세 급변 속 우리도 전환 모색할 때
이철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첫 임기 4년 동안 시리아 폭격 같은 제한적 군사조치 외엔 전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트럼프 측은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현대사 첫 대통령’이라고 홍보해 왔고, 본인도 올해 초 “지난 72년간 어떤 전쟁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자랑했다가 과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지미 카터 이래 40여 년간 분쟁을 키우거나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은 첫 대통령인 것은 맞다.
그에 반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과 중동 두 곳의 전쟁에 휘말린, 어쩌면 트럼프의 비난처럼 ‘최악의 대통령’일지 모른다. 하지만 바이든은 ‘미군을 전쟁터에 보내지 않은 21세기 첫 대통령’이라고 측근들은 내세운다. 비록 두 개의 전쟁이 벌어졌지만, 그 전쟁에 파병하거나 말려들어 싸우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부터 미군 파병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전쟁 발발 전 우크라이나에 다국적훈련단 소속으로 가 있던 병력마저 주변국으로 이동시켰다.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직후에도 바이든은 “우리 군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충돌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거듭 천명했다.
무기 지원도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되 자칫 러시아를 자극해 나토 국가 공격이나 핵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매우 세심한 균형을 잡아왔다. 대전차미사일부터 전차와 전투기, 집속탄, 장거리 타격무기까지 차츰 위력과 사거리를 높여가는 이른바 ‘개구리 삶기 전략’이었다.
바이든은 최근 사거리 300km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고, 트럼프 측마저 확전을 우려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 역시 트럼프의 복귀를 기다려온 푸틴인 만큼 핵 협박을 실행하진 않을 것이라는 면밀한 계산에서 내놓은 조치일 것이다.
트럼프의 평화협상 특사로 지명된 키스 켈로그 예비역 중장도 일찍이 양측에 협상을 압박하기 위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매드맨 전략’을 주장해 왔다. 특히 러시아 측엔 과거 트럼프가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 운운하며 긴장을 높였던 방식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종전까지 아슬아슬한 위기와 극적인 국면 전환의 사이클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위험한 게임에 한국도 부득불 끌려들어간 형국이다. 특히 북한군 파병에 맞선 우리 정부의 대응을 두고 트럼프의 차기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한국의 전쟁 개입’을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 탓만 할 순 없다. 돌이켜보면 정부가 첫 대응부터 너무 깊숙이 발을 내디딘 탓이다.
이후 미국이 그 정보를 공식 확인하는 데는 닷새나 걸렸는데, 그사이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과 군사참관단 파견을 기정사실화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뒤면 나올 미국 대선 결과도 계산에 넣지 않은 채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관성적 메시지의 되풀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한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부는 새삼 ‘침착과 절제’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당국자들은 무기 지원에 대해 함구했고, 최근 방한한 우크라이나 특사단의 동선도 대부분 비공개에 부쳤다. 군 참관단 구성도 ‘소수의 민간 전문가’라고 슬쩍 말을 바꿨다.
지금의 곤혹스러운 딜레마를 일시적 모면이 아닌 정책 전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2기가 예고하는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화하며 그 부담을 한국에 떠맡길 수 있다. 나아가 김정은과의 직거래를 통해 북한이 이 전쟁에서 손을 떼도록 할 수도 있다. 정세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 법,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변심은 무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