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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수술 탄생 30여 년… 더 정밀하고 안전해진다

입력 | 2024-12-04 03:00:00

수술 로봇 ‘다빈치’
수술 로봇, 1980년대 군사용으로 개발… 이후 美인튜이티브사가 의료분야에 활용
로봇수술 산업 연평균 16.5% 성장 전망
‘다빈치 5’ 전 세계 두 번째로 국내 출시… 움직이는 힘 측정해 섬세하게 조작 가능
정보 수집해 의료진에 데이터 분석 제공



5세대 수술용 로봇 다빈치 5는 콘솔(집도의 사용), 타워, 로봇(환자 수술용)으로 구성돼 있다. 인튜이티브 제공


지난달 15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수술용 로봇 제조사 인튜이티브에 다녀왔다. 업그레이드된 로봇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수술 산업 규모는 2024년 111억 달러(약 15조5788억 원)에서 연평균 16.5% 성장해 2029년 237억 달러(약 33조2629억 원)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이 분야 대표 기업인 인튜이티브가 5세대 로봇 ‘다빈치 5’를 국내 출시했다.



미국 국방부 프로젝트로 시작된 로봇수술

최초의 수술용 로봇은 1980년대 전쟁 중 다친 병사의 치료 목적으로 개발됐다. 당시 전투 부상병 치료 방법을 고민하던 미국 국방부가 장갑차에 로봇을 장착해 원격 수술을 시행한 것이 첫 시도였다. 이는 NASA 연구원들이 개발한 수술용 로봇으로 이 시스템은 1990년 걸프전에서 실제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프로젝트는 군사 분야가 아닌 민간으로 넘어와 인튜이티브사에서 본격적인 로봇수술 시스템 개발이 이뤄졌다.

1995년에는 여러 연구를 거쳐 민간에서 만든 첫 로봇수술용 초기 모델이 만들어졌고, 1997년 드디어 사람에게 처음 적용한 로봇수술 시스템이 완성됐다. 이 로봇은 담낭 절제술에 사용됐다. 1년 후에는 다빈치의 개발로 승모판 재건술, 위식도역류질환 수술 등 본격적으로 의료 분야에서 로봇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빈치 로봇수술 시스템은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최초 승인을 받았으며 3개의 로봇 팔에 사람의 손목처럼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엔도리스트 기구를 장착하고 10배 확대된 3D 시야를 제공함으로써 수술 접근성을 높였다.



의료진의 눈, 손목, 어깨를 대신하는 로봇 팔

개복 수술은 인간의 삶을 구했지만 삶의 질을 구하지는 못했다. 수술 후 합병증과 긴 입원 일수는 환자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 침습 수술 방법이 고안됐고 1990년대부터는 복강경 수술법이 주를 이루게 됐다. 하지만 복강경 수술은 젓가락과 같은 직선형 기구를 이용하고 카메라는 보조의가 잡아 줘야 한다. 다빈치 로봇수술 시스템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로봇수술은 2006년 2세대 다빈치 S 플랫폼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최소 침습 수술을 위해 손목 회전 기능과 수술 부위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 세 번째 보조 팔의 핵심 기술이 중심이 됐다.

3세대 다빈치 Si는 의료진의 눈 역할을 하는 의료용 내시경 카메라의 3D 영상 해상도를 높여 병변 부위를 실제로 보는 것처럼 구현했다. 두 대의 조종간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 콘솔 옵션을 도입해 2명의 집도의가 동시에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수술의 안전성을 높이고 협진이 필요한 수술에 도움이 됐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한국 의료진에 의해 직장 절제술, 갑상선 절제술, 위암 절제술 등에 대한 표준 수술법이 정립돼 로봇수술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어깨에 해당하는 ‘붐 시스템’을 도입해 사람의 어깨관절처럼 자유롭게 로봇 팔을 여러 위치에 설치해 복잡한 수술을 더 쉽게 만들었다. 붐 시스템은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4세대 로봇수술 시스템인 다중공 방식의 다빈치 Xi, 단일공 방식의 다빈치 SP에 최초로 도입됐다.

다중공 방식의 다빈치 Xi는 한 번 구멍을 뚫으면 복강 사분면(상하좌우) 어디로든 접근할 수 있어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위치가 깊은 전립선과 자궁 질환, 다양한 외과 질환 등에서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단일공 방식의 다빈치 SP는 좁고 깊은 부위를 단 하나의 절개창으로 수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는 수술 이후 가임력 보존 등이 필요한 양성 산부인과 질환뿐만 아니라 전립선암, 대장암 등 주요 암 수술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시행한 2022∼2023년 의료 기술 평가에서 전립선암, 신장암, 요관 골반 접합부 폐쇄, 부신의 양성·악성 종양, 방광의 침윤성 종양, 산부인과 악성·양성 질환, 골반장기 탈출증, 식도 종양, 폐종양 등 10개 수술에 대해 로봇수술을 조건부 권고 평가했다.



30여 년의 경험-최첨단 기술로 개발된 다빈치 5

최근 미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로봇수술 시스템 다빈치 5가 국내 출시되면서 로봇수술 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 인튜이티브는 의료진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 30년 로봇 시스템 기술 개발 경험을 총동원한 다빈치 5를 개발했다. 기존 4세대 Xi의 고기능 설계를 바탕으로 150가지 이상을 개선했다.

주목할 만한 기술은 ‘포스 피드백’이다. 집도의는 센서를 통해 조직을 밀고 당기는 힘을 측정하고 이를 손가락에서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직에 가해지는 힘을 줄이고 데이터로 수치를 확인한다. 궁극적으로 포스 피드백 기술을 이용하면 조직 손상을 줄임으로써 안전성을 높이고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또한 1만 배 이상 향상된 컴퓨터 기술로 자료 수집부터 분석, 인사이트를 제공함으로써 디지털이 가능한 로봇수술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다. 다빈치 5는 수술 과정 전반을 자료화해서 의료진에게 제공한다. 의료진은 본인의 수술 과정 중 특정 부분을 선별해 학습할 수 있다. 데이터를 분석해 집도의는 기술을 향상하고 인사이트를 확보할 수 있다.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 최용범 대표는 “지속적인 기술 발전으로 혁신적인 로봇수술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빠른 일상 복귀를 돕고 의료진에게는 더 나은 수술 결과를 제공해 왔다”라며 “로봇수술의 발전은 의료의 미래와 수술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고 다빈치 5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라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