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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 전시 어때요…생물 눈에서 본 세상 ‘언두 플래닛’, 버려진 미륵 전시 ‘거꾸로 사는 돌’

입력 | 2024-12-03 14:35:00


홍영인의 작품 ‘학의 눈밭’(2024)과 뒤로 보이는 낸시 홀트의 ‘태양 터널’(1978), 로버트 스미스슨의 ‘나선형 방파제’(1970). 아트선재센터 제공


유리 상자 속 조형물에서 곰팡이가 자라는 작품 실라스 이노우에의 ‘인프라스트럭처’(2024). 아트선재센터 제공

타렉 아투이의 ‘더 하이브-워크숍’ (2023) 기록을 담은 영상. 아트선재센터 제공

레바논 출신 예술가 타렉 아투이는 지난해 접경지대인 강원도 철원 지역 초∙중학생들과 함께 사탕, 탁구공 등 여러 가지 물체로 만든 악기로 소리를 내보는 워크숍을 열었다. 홍영인 작가는 겨울 철원으로 날아오는 두루미를 관찰하고, 양혜규는 서울대 기후연구실의 꿀벌 연구를 함께했다. 

이처럼 국내외 현대미술가들이 지난해 철원의 여러 기관과 마을 공동체와 협업해 연구, 워크숍을 하며 시작된 전시 ‘언두 플래닛’이 3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했다. 전시는 철원에서 현장 연구를 한 작가 5팀을 비롯해 총 17팀의 작가가 기후 변화와 생태계를 고찰한 작품을 아트선재센터 1, 2층에서 선보인다. 크게 ‘비인간’, ‘대지 미술’, ‘커뮤니티’ 등 3개의 주제로 나뉜다.

‘비인간’ 전시장에서는 두루미를 관찰했던 홍영인 작가가 하얀 모래 위 두루미 발 모양의 신발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신발을 신은 두루미를 관객에게 상상하게 함으로써, ‘새들’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가진 개별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는 의도다.

양혜규는 꿀벌을 주인공으로 인간 세계를 돌아보는 영상 작업 ‘황색 춤’과 양봉용 벌통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 ‘가마벌 신당’과 ‘등대벌 이중 맨션’을 만들었다. 덴마크 작가 실라스 이노우에는 소우주처럼 만든 유리 상자 속 조형물에 곰팡이 포자를 심었다. 전시 기간이 지날수록 곰팡이가 자라 색채와 형태가 변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지 미술’ 전시에는 1970~1980년대 생태와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대지 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로버트 스미스슨의 영상 ‘나선형 방파제’(1970), 낸시 홀트의 ‘태양 터널’(1978)이 소개된다. 또 한국의 자연 미술 작가인 임동식의 회화와 퍼포먼스 기록,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커뮤니티’에서는 아투이의 워크숍 영상 기록, 태국 어촌 공동체의 생태 문화를 탐구한 팡록 술랍의 판화 등이 전시된다.

이끼바위쿠르르가 논밭 위에 버려진 석상을 본떠 제작한 ‘거꾸로 사는 돌’(2024). 아트선재센터 제공


이끼바위쿠르르가 미륵 석상을 탁본한 ‘더듬기’(2024)와 조각 작품 ‘우리들의 산’(2024). 아트선재센터 제공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는 작가 그룹 이끼 바위 쿠르드(조지은, 고결, 김중원)의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 열린다. 한국의 곳곳에 방치된 미륵 석상을 탁본과 영상으로 기록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영상 작품 ‘거꾸로 사는 돌’은 망가진 축사나 폐교 옆에 덩그러니 미륵 조각상이 놓인 장면들을 풍경화처럼 재구성했다. 또 미륵을 숯으로 탁본한 종이 회화 ‘더듬기’는 벽면에 걸려 있다.

작가들은 미륵이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로 한국의 곳곳에 자리 잡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잊힌 것에 주목했다. 여러 미륵 불상의 탁본을 뜰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버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방치된 불상들을 찾아가며 더듬어보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미륵이 말했던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품으며 ‘거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고, 그것이 작업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 기간 중인 7일에는 양혜규, 14일에는 이끼바위쿠르르의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두 전시는 모두 내년 1월 26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