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불법총기 소지-탈세혐의 유죄 평결 “사면 없다”던 바이든 “정치적 기소”… 조건 없는 사면, 형량선고 취소될듯 트럼프 “정의 남용이자 실패” 비판… 당내서도 “후대 대통령에 나쁜 선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매사추세츠주 낸터킷의 한 서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들 헌터와 함께 나오고 있다(왼쪽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1일 불법 총기 소지와 탈세 혐의를 받아 온 헌터에 대한 사면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낸터킷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사면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낸터킷=AP 뉴시스
내년 1월 20일 퇴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불법 총기 소지, 탈세 혐의로 올 6월 유죄 평결을 받은 아들 헌터(54)를 1일(현지 시간) 전격 사면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죄 평결 전후로 “아들을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약 반년 만에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퇴임 48일을 남겨둔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법무부가 한 기소를 정면으로 부인해 적잖은 비판이 제기된다. 사면이 실행되면 헌터는 현직 미 대통령 자녀로는 ‘첫 기소’에 이어 ‘첫 사면’ 기록까지 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공화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정의의 남용이자 실패”라고 혹평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무리한 사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도덕성에서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사면 없다”서 “사법 오염” 말 바꾸기
헌터는 2018년 10월 바이든 일가의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에서 권총을 샀다. 마약 중독 이력이 있어 델라웨어주에서 총기를 살 수 없는데도 구매했고 당시 서류에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허위로 기재했다. 올 6월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는 석 달 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최소 14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유죄도 인정했다. 이 사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 에너지 비(非)전문가인 헌터가 ‘부친 후광’으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부리스마’의 임원을 지내며 고액 연봉을 받았다는 의혹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당초 총기와 탈세 혐의에 대한 형량 선고는 각각 12일, 16일로 예정돼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두 사건에 모두 ‘조건 없는 완전 사면(full and unconditional pardon)’을 단행함에 따라 형량 선고 또한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죄 평결 당시 “사면도, 형량 단축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백악관 또한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이 헌터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총 6차례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수년 동안 수감돼 있는 ‘J-6 인질’도 사면에 포함되느냐”고 꼬집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한 자신의 지지층 중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폭동에 가담했다가 수감된 이들을 ‘J-6 인질’이라고 부른다. 공화당도 바이든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도 첫 임기 만료를 약 한 달 앞두고 장녀 이방카의 시아버지이며 탈세 전과가 있는 부동산 업자 찰스 쿠슈너를 사면했다. 2기 행정부에서는 그를 신임 주프랑스 미국대사로까지 지명한 만큼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다.
상당수 민주당 인사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레그 스탠턴 하원의원은 X에 “헌터는 정치적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중범죄를 저질러 배심원단에게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재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는 “대통령이 국가보다 가족을 우선시한 것이 실망스럽다”며 “후대 대통령에게 나쁜 선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입장도 난처해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민주당은 성추문 입막음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당선인을 두고 “사익을 위해 사법체계를 조작하려 한다”며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모두 ‘바이든 법무부가 정치화됐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구심점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여전하다.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26일 대선 패배 3주 만에 화상 연설에 나섰지만 패배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잘했다”는 식으로만 발언해 큰 비판을 받았다. ABC방송은 2일 “민주당은 바닥부터 무너졌다는 게 드러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이겼다면 이번 사면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