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상식을 앞설 때가 있다. 올봄 강원 고성을 여행할 때였다. 숙소가 해수욕장에 맞닿아있어 머리맡 발코니 창문을 열면 밤바다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었다. 하루는 기분 좋게 잠을 청하려는데 난데없이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커튼을 젖혀보니 젊은 남녀 넷이 해변에서 불꽃을 터트리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고, 해수욕장 쪽으로 발코니가 나 있는 숙소들이 많았기에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남녀들의 대화 소리가 잘 들렸다. 일행 중 한 명이 지금, 여기서 불꽃을 터트려도 괜찮은지 물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당당하게 답했다. “괜찮아, 폐장 기간에는 불법 아니야.”
남자의 허세도 일리 있었다. 일단 10년 전 제정된 해수욕장법에 따르면 백사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행위는 불법이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개정된 법이 2019년 시행되면서 해수욕장이 폐장하거나 개장하기 전에는 입수할 수 있게 됐다.
법은 늘어나고 있다. 법제처에 따르면 현행 법령과 자치 법규를 합치면 15만 건이 넘는다. 20년 전에는 6만여 건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법대로 해’를 외치는 사람들도 는 것 같다. 법대로 하면 괜히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다. 법대로만 하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법 만능주의다.
법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인간사의 모든 영역을 규정할 순 없고, 법이 없는 곳에서 구성원들은 상식이란 걸 만들고 따라왔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선 뛰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하는 것들 말이다. 이것을 깨는 것을 민폐라고 불렀고 부끄러워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법이 아닌 민폐는 당당해진다. 러닝 크루가 말썽이자 한 자치구가 종합운동장에서 5명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시켰다고 한다. 법 만능주의의 시각에서는 4명이 달리는 건 괜찮다. 정말 그런 걸까.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매너는 오히려 감동을 준다. 젖은 우산을 굳이 버스의 빈 옆자리에 걸어두지 않아 젖어버린 한 승객의 바지. 그런 것들이 감동적이다. 원래 비매너가 판치는 경기일수록 스포츠맨십은 더 빛나는 법이니까.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