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뇌파는 1000억개 신경세포의 신호… 정밀측정 통한 뇌질환 치료 기대[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입력 | 2024-12-03 22:57:00

‘뇌의 언어’ 뇌파 측정… 뇌파 측정 시 잡음 많고
판독에 훈련 필요해 고난도… 보다 쉽게 뇌파 측정하게 되면
뇌 노화 상황-치매 부위 확인 등… 뇌건강 관리 중요 수단 될 듯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의 신’ 같은 느낌의 동료 학생들 틈에서 공부를 잘하기는 참 어려웠고,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잘해서 이 경쟁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잘 모르는 문제를 풀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서 문제를 풀었고, 그 꿈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깨서 다시 문제를 풀어 보니 자기 전에 풀 수 없었던 그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뇌가 어떻게 학습을 하는지, 뇌는 어떻게 동작을 하는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뇌는 1000억 개 정도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대략 1350cc, 즉 500mL 플라스틱 물병 3개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뇌에 이렇게 많은 신경세포가 들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1000억 개의 신경세포를 돕는 역할을 하는 비신경세포도 신경세포만큼이나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각각의 신경세포는 다른 여러 개의 신경세포와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 있고 그 연결망을 통해 주고받는 전기적 화학적 신호에 의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숨도 쉬고, 걷고, 팔다리를 움직이고,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뇌신경 회로망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관장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뇌의 언어는 상당 부분 전기적 신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뇌의 언어는 뇌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읽어 낼 수 있다. 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뇌의 파동이라 하여 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뇌파는 두개골 표면에 전극을 붙이는 방법으로 읽어 낼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1000억 개의 신경세포 하나하나의 전기적 신호를 자세히 읽어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개골 표면에서 읽지 않으면 두개골을 뚫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많은 경우에 사용하기 적당하지 못하다. 두개골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신호를 읽기 위해 두개골을 뚫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개골 바깥에서 읽을 수 있는 전기적 신호를 잘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뇌파는 지금까지 뇌전증 환자의 뇌파를 읽는 목적 이외에는 연구실 밖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뇌파 측정이 어려웠던 주요 이유 중에는 뇌파 측정에는 많은 잡음이 따른다는 점, 또한 뇌파를 읽는 데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 있다. 두개골 속의 신경세포에서 나오는 신호를 잘 측정하기 위해서는 전기 신호에 민감한 전극을 머리에 붙여야 하는데 민감한 센서인 만큼, 뇌에서 나오는 신호 이외의 신호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이러한 잡음 신호가 너무 많은 경우 판독이 매우 어렵다. 또한 뇌파는 두개골 내부의 복잡한 회로에서 나오는 작은 신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판독하는 훈련 자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랜 수련을 거친 소수의 뇌전증 전문의 이외에는 뇌파를 전문적으로 판독할 수 있는 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런 잡음을 자동으로 제거하고, 뇌파 속 정보에 대한 수치화 및 시각화를 자동으로 할 수 있다면, 뇌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뇌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뇌파를 쉽게 측정하고 읽어 낼 수 있으면 몸무게, 체지방량, 혈당을 추적해 나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듯 뇌의 기능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 결과가 축적됨에 따라 뇌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좀 더 정밀한 분석으로 같은 뇌파를 통해서 알아 낼 수 있는 내용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내 뇌가 좀 노화가 진행되었구나’라는 정보에서 시작해서, 더 발달된 연구 결과를 통해서는 내 뇌의 어떤 부분에서 치매가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그 부분을 치료해야 하는지를 알아 낼 수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 발전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몸무게나 체지방, 혈당처럼 뇌파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뇌 건강 관리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어머니의 친구분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이야기만 몇 마디 해 보시고, 약을 주시면서 그냥 한번 먹어 보라고 했다. 이렇게 엉터리로 해도 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공감이 되었지만, 그 의사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신 것이라고 설명을 해 드렸다. 현재는 뇌의 상태를 파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 보시고 약을 주신 후에 그 약효가 있는지 보는 것과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뇌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씀드렸다. 뇌의 언어, 즉 뇌파와 같은 뇌의 신호를 직접 측정해서 뇌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이러한 분들의 답답함을 직접 해결해 줄 것이다. 내가 처음 뇌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이유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를 직접 뇌 연구에 끌어들인 것은 좀 더 절실했던 가족의 뇌질환이다. 뇌의 언어에 대한 이해는 사랑하는 가족의 뇌 건강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고등학생 때 가졌던 뇌 학습 최적화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