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엄군 차량 뒤로 군 헬기가 경내로 비행하고 있다. 2024.12.4/뉴스1
“굴욕적으로 끝난 셀프 쿠데타.”
3일(현지 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이같이 진단했다. 갑작스러운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2시간여 만에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로 끝났다. 외신들은 견고한 민주주의 국가로 여겨지던 한국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을 소상히 전하며 대외 관계에 미칠 영향까지 우려했다.
폴리티코는 동아시아 전문가인 쉬나 체스트넛 그레이텐스 텍사스주오스틴대 교수를 인용해 “그의 대통령직을 정의할 오점”이라고 지적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의 정체성을 크게 배반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틀로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 중국,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에 적극 동조하던 윤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을 내린 것이다. 백악관은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미 관계에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한국의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위기를 어떻게 다룰지 힘든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 평화재단 에반 페이건바움 부회장은 “이번 일은 윤 대통령에게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미국도 이번 사안으로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CNN에 말했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대니얼 러셀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이 초래된 상황을 북한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4일 조간신문 1면 톱 기사로 한국 비상계엄 소식을 전했다. 전날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1호 포고령, 국회 군 투입, 미국의 우려 표명 등도 상세히 다뤄졌다.
관영매체 중국신문 역시 4일 “대한민국에 ‘서울의 겨울’이 왔다”며 전두환 대통령이 일으킨 12·12 사태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을 빗대어 이번 사건을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도 4일 비상계엄이 “쿠데타와 비슷하다”고 지적하며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 앞서 9월 제기된 계엄령 발령 가능성 등을 전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