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 9개국 수출하는 도정한 기원 대표
지난 달 12일 서울 명동의 한 칵테일 바에서 만난 도정한 기원위스키증류소(옛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50)는 ‘왜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고자 하나’라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오래 전부터 그는 지인들을 만날 때 일본, 대만, 스코틀랜드 등 다양한 나라의 위스키를 꼭 챙겼다. 그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건 ‘한국엔 위스키가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2018년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증류소인 ‘쓰리소사이어티스’를 경기 남양주에 설립했다. 싱글몰트는 보리와 물, 효모만으로 만든 위스키 원액으로 맛과 향이 강하고 값도 비싼 고급 위스키다. 2020년부터 3년 간 숙성 과정을 거쳐 기원위스키 증류소는 지난해 2월 ‘배치’를 출시했다. 배치의 가격은 10만 원 대 초반. 모든 생산 과정이 한국 사계절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애주가들을 사로잡으며 품귀 현상을 빚었다. 인기에 힘 입은 기원위스키증류소는 지난달 말에는 △호랑이 △독수리 △유니콘 등 기원 시그니처 라인 3종을 출시했다.
품질을 위해 도 대표가 가장 공들인 건 위스키 제조 경력 40여 년의 스코틀랜드 출신 마스터 디스틸러(증류주 생산자) 앤드류 샌드 씨 영입이었다. 샌드 씨는 1980년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시작해 일본의 니카 증류소,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 증류소 등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위스키 제조 전문가다. 도 대표는 “샌드 씨에게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하면서 한국에서 지내보라고 설득했다”며 “그가 한국에서 1년을 지내면서 사계절의 다채로움에 반했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한국은 위스키 제조에 있어 축복받은,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다채로운 사계절과 그에 따른 큰 연교차다. 위스키 원액은 배럴(나무 통) 안에서 숙성되는데 여름과 겨울의 큰 연교차는 배럴 팽창과 수축에 도움이 된다. 그는 “여름에는 배럴이 팽창하면서 위스키 원액을 빨아들였다가 겨울에는 뱉어내는데, 이는 위스키 숙성을 빠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며 “기후가 상대적으로 일정한 스코틀랜드나 대만 등에 있는 증류소에서 4년은 숙성해야 나는 맛을 한국에서는 1년이면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이처럼 위스키를 만들기 좋은 환경인데 왜 증류소가 별로 없나’라고 묻자 그는 “위스키로 돈 벌기는 힘들다”며 웃었다. 그는 “위스키 숙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견뎌야 하고, 거기 들어가는 맥아, 배럴, 숙성창고 등을 마련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산 위스키를 생산하겠다고 뛰어든 이유는 ‘한국 술문화를 더 건전하게 만들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도 대표는 “술을 음미하면서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이 있었다”며 “풍부한 향을 느끼면서 한국산 위스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위스키만의 맛의 특징을 묻자 그는 강렬한 ‘펀치’가 있다고 표현했다. 가령 일본 위스키가 미소 된장국처럼 슴슴하고 은은하다면, 한국 위스키는 된장찌개 같다는 것이다. 두 음식 모두 된장을 원료로 하지만 된장찌개의 맛이 더 강렬한 것처럼, 위스키도 신기하게도 각 국가의 식문화를 닮았다는 이야기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