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일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 언론은 이 정도의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백악관 제공 사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백악관 공식 트위터
최혁중 사진부 기자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차담 회동’은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과 ‘대통령실 참모들의 인적 쇄신’ 등의 이슈로 큰 관심을 받았지만 비공개로 진행된 후 대통령실은 악수(1장) 산책(6장) 차담(2장)으로 구성된 9장의 사진을 제공했다.
사진기자들이 취재를 했으면 몇 장의 사진이 마감됐을까? 아마도 50장 이상의 A컷이 나왔을 것이다. 서로 시선이 엇갈리고 돌발 상황이 많은 ‘악수’와 차에서 내리는 윤 대통령의 모습만 10장 이상, 동선이 가장 긴 ‘산책’에서는 윤-한과 함께 이번 일정에 함께한 참모들도 앵글에 많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가장 중요한 ‘면담’은 한 대표, 정진석 비서실장과 마주 본 윤 대통령의 2 대 1 구도와 윤-한 1 대 1 구도, 면담 내내 강한 표정을 유지하는 윤 대통령의 디테일한 장면들이 기록됐을 것이다. 또 회동이 예정 시간보다 20여 분 늦어 외부에서 기다린 한 대표의 모습과 다이어트 콜라의 클로즈업도 담겼을 것이다.
3월 18일 서울아산병원, 3월 26일 충북 청주한국병원, 4월 1일(의료개혁 대국민담화 발표일) 대전 유성선병원, 4월 5일 부산대병원, 4월 9일 경기 부천세종병원, 9월 4일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9월 18일(추석 연휴 마지막 날) 서울 우리아이들병원, 10월 15일 제주대병원을 잇달아 방문했지만 간담회를 열거나 환자를 격려하는 일반적인 사진을 제공했다. 부천세종병원에서는 수십 명의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사진을 찍고 어린이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사진도 제공했다.
미국 백악관의 경우는 어떨까? 1993년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에서 ‘LA 폭동’, 1999년 AP통신에서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 백악관에서 전속 사진사로도 일했던 강형원 씨는 “미국 언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워룸에서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장면을 지켜봤던 모습 정도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백악관이 제공하는 사진은 쓰지 않는다”며 “비공개 행사라도 출입기자들은 백악관을 드나드는 출입문에서 모든 이들을 찍을 수 있고 기자들의 취재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는 출입기자라도 허락된 취재가 아닌 이상 휴대전화로도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돼 있다.
청와대 시절부터 대통령실은 풀 기자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개 일정’의 경우 사진 2명, 방송 2명, 취재 1명이 취재를 해 내용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청와대 시절(사진 4명, 방송 3명, 취재 2명)과 비교해 절반 정도 줄어든 규모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취재 인원이 적으면 취재의 범위와 양, 세밀함 등이 떨어질 수 있으니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전속 사진사가 대통령을 찍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에서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처럼 퇴임 후 공개되는 전임 대통령의 ‘비공개 컷’은 국가의 큰 기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에 들어가는 사진은 사진기자가 찍어야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 대통령실은 공개된 공간에서 상상도 못 한 것들을 찍어대는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불편할 수 있겠으나 국민들은 깨끗하고 정제된 이미지에 연출의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이미지 정치’는 자기 카메라가 아닌 남의 카메라로 해야 진정한 고수이지 않을까?
최혁중 사진부 기자 saji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