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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와 ‘당사의 50인’[횡설수설/김승련]

입력 | 2024-12-04 23:21:00


‘권한은 많고 책임은 없다’는 말을 듣는 국회의원도 때로는 벌거벗고 광야에 설 때가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가 그랬다. 찬반에 대한 본인 생각을 드러내고 평가받아야 할 순간이 왔던 것이다. 국회는 4일 오전 1시쯤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진행했다. 투표 참석자 190명 전원이 찬성했는데, 여당 소속은 18명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반대한다는 숫자가 108명 의원 가운데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건너편 국민의힘 중앙당사에는 여당 의원이 50명 넘게 모여 있었다. 표결에 불참한 이들로, 당 주류에 가까운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오락가락 지시로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원내대표 이름의 공식 집결 지시는 3일 오후 11시 이후 2시간 동안 ‘즉시 국회→중앙당사 3층→국회 예결위 회의장→당사 3층’으로 계속 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 투표는 끝나버렸다.

▷당사에 모인 의원들은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냐”며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8월 이후 계엄설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45년 만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도 상당수 집권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관찰자에 가깝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결정족수를 채웠다고 선포하는 장면이 TV에 나오고 국회 표결 처리가 임박하자 몇몇 의원이 “계엄은 안 될 일” “대통령은 왜 성사도 못 시킬 계엄을 선포했느냐”는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당사로 집결시켜 놓고는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 장시간 머물렀다. 본회의장까지 3, 4분 거리였지만 회의장에 가지 않았다. 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그는 상황 파악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표결 불참에 대해선 “내 판단으로 안 했다”고 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은 “추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으로 오라는 한 대표의 말을 거부했다”는 말까지 했다. 추 대표는 4일 새벽 상황에서나, 이날 오전 열린 의총에서도 공식적으로 계엄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도 역사와 민심의 평가 무대에 오를 처지에 놓였다. 의원들은 계엄 해제 표결에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받게 될 것이다. 표결 불참자 중 일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당사에 머물던 범주류 의원 50여 명은 어떤 정치적 의사표시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의원들은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을 넘어서까지 본회의장을 찾았고, 어떤 의원들은 제3자처럼 TV로 본회의장 표결을 지켜보며 개인적 논평을 했을 뿐이다. 극명하게 엇갈린 장면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