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입구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호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 직후 계엄령에도 없던 대목이다.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채택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 시위도 금지됐다.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될 판이다. 당연히 이 따위 글도 못 쓴다. 언론 출판은 계엄사 통제 대상이다(그간 써온 글 때문에 벌써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당했을지 모른다).
▶3일 윤석열 대통령 계엄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1호 전문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41203/130562697/1
● 비상계엄이 야당 경고성이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야당의 폭거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거다. 통탄할 일이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했으니 하는 엉뚱한 소리지, 아파트 전체를 불태워놓고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내는 걸 알리려 불 질렀다는 소리보다 비정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KTV 화면 캡쳐
윤석열이 긴급 담화에서 밝힌 대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는 점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국민 호소문을 내놓았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총선 패배 뒤 밀사를 보내 야당 대표와 ‘딜’을 시도했던 것처럼 총리나 내각 절반을 내놓을 테니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대화와 타협을 했어야 했다. 지난번 같은 기자회견 말고 진솔한 회견으로 국민 앞에 털어놓고 협조를 구했어도 국민은 대통령 편이 돼 줄 수 있었다.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은 진작했어야 할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나 같은 사람을 비롯해 주류 언론에선 입과 팔이 아프도록 말하고 또 썼다. 계엄 선포 담화대로, 아니 극우 유튜브 말마따나 국회에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이 있다면, 윤석열은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참석의원 190명의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만에 하나, 계엄군의 국회 진입이 성공해 비상계엄이 살아있다 해도 윤석열이 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포고령대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이 본업에 복귀’할 리 없다. 이미 군에 입대하거나 다른 업종에 취업한 의사는 어쩌란 말인가.
● ‘윤석열 유신’이라도 감행할 능력 있나
고려대학교·서강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7개 대학 총학생회 학생들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촌 스타광장에서 비상계엄 대응을 위한 전국 대학 총학생회 긴급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친윤(친윤석열)은 물론 한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심경이 복잡할 터다. 어떻게 교체한 보수정권인데 2년 반 만에 망한단 말인가. 이대로 탄핵이 진행될 경우, 내년 초 대선에서 필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권 상납할 게 분명하다는 근심이 자자하다.
● ‘윤건희 정권’ 사죄하고 윤석열 스스로 사임하라
그러나 설령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는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다수 국민은 이미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든 못 있든, 윤석열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국이다. V 제로 김건희 여사가 국정에 관여해 온 ‘윤건희 정권’이긴 해도 김건희가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결국 탄핵되든 안 되든 그들 부부가 설 자리는 없는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국회 해제요구안 통과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손을 잡고 팔을 두드리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은 국민 앞에 절절히 사죄하는 것으로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 지난 2년 반, 절대 변하지 않는 윤석열을 죽도록 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희망을 갖고 싶다. 또 한 번 탄핵당하는 불행한 보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보다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사임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 물론 김건희와 함께 사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탄핵보다는 사퇴가 덜 수치스럽다. 그리하여 다음 대선까지 ‘거국내각’이 들어서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본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